간 산 : 칼봉산(900) - 매봉(910) - 깃대봉(930) - 송이봉(810) - 환종주

일시 : 2012년 5월 5일

산행시간 : 출발 9시 30분 - 도착 16시 40분 (7시간 10분)

날씨 : 맑지만 시야는 않좋음/정상 능선부에서 바람 강함

인원 : 홀로

산행거리 : 약 20km

 

칼봉산 휴양림 옆 개천. 여기가 산행 기점. 가평군청에서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은 썩 상쾌하지는 않다. 중간에 비포장인 것은 자연 그대로여서 참을만 한데,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마지막 지점에서는 매우 어수선하고, 자연 파괴 현장을 목도하는 거 같아 마음 좀 언잖다. 

 

개천 건너 초입 도로. 이 길은 회목고개를 너머가면 연인산과 마일리가 나온다. 그리고 고개 가기 전에 경반사가 있다.

길은 사람의 소통이며 마음의 소통이고 더 나아가 문명의 소통이다. 하여 길에서 사람 냄새가 물신 풍긴다. 이 산골을 따라 걸었던 옛 사람들의 체취가 아직도 길 바닥에서 울어나온다.

폐교된 경반분교가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들머리가 있는데 아차하고 사진을 찍지 못했다. 경반분교는 민간인이 인수하여 팬션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데 1박 2일 팀이 와서 묵어던 곳이라 한다. 지나오면서 보니까 크게 간판을 부쳐놓았던 걸 보았다. 이런 청정지역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만, 난 왠지 내키지 않는다. 자연의 숨결을 느끼는 경험이 아니라 즐기려는 태도에 고민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을 즐기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이 산은 너그럽게 그 인간들을 품지는 않는다.

 

분명치 않는 임도에서 본격적으로 능선으로 오르는 길목. 이제 좋은 시절을 갔다.

사진의 각도 때문에 비탈의 경사가 나오지 않지만, 안부까지 이어지는 평균 45도 이상의 급경사가 이어진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급경사는 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있고 또한 오르다 보면 한숨 쉴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 이런 육산으로 된 급경사면은 호흡이 따라주어야 한다. 호흡, 예전에 호흡을 음미하기도 하고 힘이들면 정신력으로 이겨냈지만, 이젠 둘 다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이탓으로 돌리기엔, 그 현실을 인정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나를 탓한다. 체력도 정신력도 나를 지탱하지 못하는 현실, 그 거부의 몸짓이 마지막 오르막에서 본능적으로 토해져 나왔다. 발악이리라.

드디어 올라선 주능선 안부. 이젠 된통비탈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턴 지루한 능선과의 타협이 기다리고 있다.

능선에 있는 삼거리. 왼쪽으로 가면 용추계곡. 이정표는 항상 반갑다. 텅빈 산에 홀로 가는 산객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는 이정표는 그래서 반갑다.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드디어 칼봉산 정상. 시야는 썩 좋지 않다. 잉간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큰 정상석은 사실 필요없는데, 무슨 뱃장인지 가평군은 큰 돌 하나을 떡하니 세워놓았다.

점심 먹은 지점에서 본 유일한 조망. 내가 가야 할 깃대봉.

 

그리고 매봉. 저기 봉우리를 거쳐 왼쪽 능선을 따라 깃대봉으로 가야 한다. 이 고달푼 산객의 푸념.

회목고개 사거리 이정표. 여기서 오랜지 두개째를 먹었다. 사실 힘들다. 여기서 시간 반이면 휴양림까지 갈 수 있다. 올름길에서 너무 용을 쓴 결과 체력이 고갈됐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지를 먹고, 10여분 친구한테 전화를 해 수다를 떨고 일어섰는데 갑자기 힘이 솟는다. 하산 생각은 사라지고 다시 오르려는 야성이 살아 꿈틀거린다. 오르자, 그래 가자,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업이다.

매봉 가는 길에 있는 이정표.

매봉 정상. 여기선 조망도 좋지 않고, 시선을 사로잡는 풍광도 없다. 오른쪽에 흉물스런 무선통신탑과 산불 감시 콘테이너가 흉물스럽게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그저 주위에서 높은 봉우리 일뿐이다. 그래도 잘 생기나 못 생기나 산은 산으로서 우리 앞에 있고, 나는 오른다. 산이 이쁘지 않다고 탓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오르면서 그 봉우리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오히려 이런 산이 너무나 산 같아 이뻐 보인다.  

매봉에서 내려오며본 깃대봉. 갈길이 멀다.

삼거리. 앞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경반사가 나오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내가 올라간 경반분교가 나온다. 여기서 산나물을 캐는 중년의 부부를 만났다. 무슨 보신을 하시겠다고 이 높은 산에 올라 그것도 길 없는 산을 헤매는지, 그 정성이면 세상 사는 것 무서울 게 없을 게다. 과거에는 전문적으로 산나물과 약초를 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잘 볼 수가 없다. 문득 소백산 문수봉에서 본 할머니가 떠오른다. 꾸부정하고 추레한 할머니가 해발 1400미터가 넘는 소백산에 올라 약초를 캐기 위해 산속을 헤매는 모습은 인간의 생존 능력의 무한함을 보는 것 같아 경탄을 했는데, 그게 인생이야라고 하기엔 당위성이 너무 약했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삶을 초탈한 보살이다.

  

깃대봉을 거쳐 넘어가야 할 송이봉. 

드디어 깃대봉. 여기도 별로 눈길을 잡는 것은 없다. 오랜지 하나를 더 먹는다. 이제부터 체력전이다. 5시간 되었으니 지칠 때도 됐다. 5개짜리 묶음 오랜지를 2개만 가져오고 3개는 차에 두고 오려고 했는데, 차에 두면 오랜지가 맛이 갈 거 같아 다 가져왔다. 하여 당초 잉여분이었던 오랜지가 현재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두개만 가져왔다면 얼마나 후회막급이었을까. 거듭 다짐하지만 제발 식량 좀 넉넉하게 가지고 다니자...

 

송이봉 하산길의 마지막 봉우리.

능선이 끝나는 임도 분기점. 지겹게 걸어온 능선. 가도 가도 끝이 없던 능선이 여기서 쫑을 친다. 물론 체력이 고갈되어 인식 능력이 혼미해진 결과이다. 정신이 육신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때론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므로소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육신의 한계는 곧 정신의 고립의 시발점이다.

 

사경을 헤매고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 분기점. 이 길을 조금만 따라가면 애마와 해후한다.

 

아침에 올라왔던길. 지금은 왠지 인생의 힘든 역정을 마치고 귀향하는 듯 회한이 사무친 길처럼 보인다.

종착역. 다 왔다. 끝났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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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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