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김수민 리베이트 사건의 여파로 안철수는 결국 당대표에서 사퇴했다. 당초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그치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광풍이 되어 그를 기어코 몰아내고 말았다. 벌써 6번째 철수라고 하는데, 뒤돌아보면 몇 년 안 되는 그의 정치 역정은 정말 파란만장하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그 만큼 자의적으로 “철수”를 한 정치인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안철수에겐 구민주계란 존재는 자신의 정치 로드맵에서 배척되는 세력이었다. 그러니까 새정치를 외치는 그에게 구민주계는 어울리지 않았고 마음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가 더민주에서 탈당할 무렵 구민주계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더민주당을 탈당하자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절치부심 와신상담 스티

브 잡스처럼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탈당한 그를 가장 먼저 반겨준 세력은 선도 탈당한 호남 국회의원들이었다. 안철수는 가능하면 호남외 지역 의원들이 탈당하기를 바랐지만 상황은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탈당의 속도는 지지부진했고 호남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절박했는지 모르지만, 안철수는 총선 막바지에 한때 척결의 대상이었던 구민주계와 손을 잡는다. 그것은 위험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안철수 정치여정에서 치명적인 악수일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안철수는 이제 자신은 정치에서 나이브하지 않다고 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강력한 권모술수적 내공이 필요한데 백면서생 같은 그가 과연 그 중원에서 생존할 것이지는 항상 호사가들의 얘깃거리였다. 물론 아니라고 손을 젓겠지만 그가 구민주계와 손을 잡은 것은 어찌되었든 관전자 입장에서 볼 때 나이브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호사다마가 겹치면서 국민의당은 호남을 거의 석권하고 제3당이 된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3당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비록 본의 아니게 호남당이란 비아냥을 받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흑묘백묘 제3당이 된 것만큼은 분명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정치는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생물과도 같다. 그 넘치는 역동성은 취약한 안철수를 집어삼키듯이 내동댕이 쳐댔다. 세상은 가혹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김수민 리베이트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 사건의 전말이 이미 언론에 지겹도록 들어났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또 다시 “철수”했다. 예리한 촉수를 가진 논객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출 행동이었다. 그리고 당에 남은 것은 한가닥 한다 하는 호남 국회의원들이며, 그 중심에는 구민주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정치가 아무리 생물이라 하여 변화무쌍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주인이 바뀌리라곤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나이브하지 않다고 강변한 안철수의 정치 행로는 정말 “무진기행”이었다. 예측 가능함을 당당히 거부하는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연구의 대상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물론 안철수가 국민의당을 탈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대표가 아니라고 해서 대선 출마가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지원이 말했듯 국민의당의 주인은 안철수이며 그런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안철수 없는 국민의당은 생각할 수 없다. 안철수는 이런 당의 메카니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철수”라는 과격한 결단을 내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구민주계가 당권을 쥐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격은 박지원 원내대표가 당대표까지 먹었다는 것이다. 이미 당 핵심들과 긴밀하게 정치적 협의와 약속을 거치고 박지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를 했을 테지만 중요한 건 그는 “사막의 여우 롬멜”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박지원에게 절대군주를 만들어 준 것은 그에게 당의 운명을 맡긴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인과 사랑방 손님이 바뀐 국민의당의 현재 어수선한 모양새는 수많은 예측과 온갖 상상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나이브하지만 그 나이브를 극구 거부하는 안철수와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정치를 즐기는 박지원의 관계는 앞으로 전설적인 금강의 무협지에 버금가는 흥미진진한 얘깃거리와 서스펜스적 사건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벤처스럽게 하는 안철수는 그 독특한 성향으로 보아 다시는 당의 전면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문재인처럼 자유롭게 범국민적 정치행보를 하며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구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의 구상에 없던 구민주계와의 위험한 거래에서 그동안의 손실을 복구할 정도로 충분한 이윤을 남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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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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