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친구 찾기, 동창생 찾기가 열병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런 현상은 현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모임과 아이러브스쿨 등으로 대표되는 사이트들이 생기면서 번지기 시작한 친구 찾기는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준 착한 선물이었다. 인터넷이 아니라면 언감생심 어디서 옛날 친구를 찾겠는가. 초등학교시절 철수와 순희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막연하게 추억을 더듬다 이내 지워버리지만, 현재는 중년으로 변한 그 철수와 순희는 당신의 눈앞에서 웃고 있다. 그리웠던 어릴 적 동무들이 중년이 되어 하나둘 모인다. 옛 추억 속의 동무들이 지금 내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고 있다.


이렇게 10여 년 동안 모인 동창들은 이제 정기적으로 활발하게 모임을 갖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의 초등학교 동창회는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 주위에 둘러보면 너도나도 초등학교 동창회 운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회사의 근엄한 사장님도 초등하교 동창회에 나가 해맑게 웃으며 수다를 떤다. 그리고 집안에만 있던 주부들도 동창이란 새로운 세계에 동화되어 권태로웠던 일상을 일신시킨다. 이삼십년 떨어져 있다 만난 동무들은 사회 각지에서 각자 열심히 살아왔기에 사는 모양과 방식이 다르더라도 하나의 인연으로 동질감을 갖고 금새 가까워진다.


초중고 동창회 중에서 초등학교 동창회가 유독 붐을 이루는 것은 따지고 보면 남녀공학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의 중등학교는 거의가 남자, 여자 학교가 분리되어 있었고 유일하게 초등학교만이 남녀공학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동창회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초등학교처럼 적극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꼬맹이적 아련한 추억도 한 몫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초등학교도 남녀공학이 아니었다면 고등학교 동창처럼 데면데면하게 접할 것이다. 다 음양의 조화이기에 숨길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동창의 열광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특이한 현상 중에 하나이다.


남자만 있는 동창회는 그 나름대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여학교 동창회도 그 나름 분위기를 조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동창은 문제를 양산한다.


몇 년 전, 우리 윗집에서 대판 부부싸움 하는 소리가 들려 집사람한테 이유를 물으니, 그 집 부인이 초등학교 동창들과 수시로 만나 밤늦게, 그것도 알콜 냄새 팍팍 풍기면서 귀가하였고 이에 참지 못한 남편이 급기야 응징을 가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집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런 가정의 불화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나가던 동창회에 출입을 끊는 수도 있고, 그런 만남이 가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면 열심히 참석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각자 처한 가정의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초등하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주부가 여고 동창들을 만나 밤늦도록 놀지는 않으니까.

내가 아는 친구는 남녀공학인 중학교 동창회 회장을 맡았다가 극혈하게 반대하는 아내의 등쌀에 못이겨 일년만에 그만두었는데, 결국은 아내가 의부증을 가져 서로 몇 년 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제 중년의 초등학교 동창들을 그들이라고 칭하겠다.


처음엔 옛추억이고, 호기심이었지만, 나중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욕망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이 그들의 특성이다. 물론 초등하교 동창회의 구성원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 중 일부가 매우 열정적이라는 말이다. 이점 오해 없기를 바란다.


그들은 일명 번개라고 하는 즉흥적 모임을 즐겨 갖는다. 인원은 대충 10명 내외이며 필히 여자가 참석한다. 우선적인 조건이 여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남자들만의 번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녀의 어울림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을 거나하게 걸친 그들은 오직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농담들을 쏟아낸다. 중년의 삶의 진중함은 찾을 수 없고 오직 즐거움만을 위해 민망한 농담과 초등학교 수준의 유치한 말장난 등이 난무한다. 여자와 남자 다 똑 같다. 그들은 또한 늦은 시간에도 집에 있는 여자 동창을 불러내기 위해 전화를 하는 무례함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른다. 하여튼 음식점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식하지 않고 그들은 끝없이 떠들어댄다.


그리고 그들은 주인의 눈총을 받으며 식당을 나와 네온싸인이 빛을 발하는 욕망의 거리를 거닐며 오색찬란한 노래방을 찾아간다. 그들은 세상의 그 무엇에 억눌려 있었는지, 카바레 같은 조명 아래에서 한맺힌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대며, 한쪽에서 남자 여자가 서로 껴안은 채 지긋이 눈을 감고 브루스를 춘다. 분위기는 뜨겁게 고조된다. 노래방 문화와 동창생 문화가 만들어내는 특이한 놀이 문화이다. 약간의 독설을 가미하면, 일종의 욕망의 분출구로서 동창회는 존재하는지 모른다.


대게의 동창회에는 산악회가 있다. 그 산악회라는 것이 산이 좋아서 모이는 산악회가 아니라 노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 산을 욕 먹이고 있다. 등산을 우선적으로 하고, 남는 시간에 간단히 뒤풀이를 하면 깔끔하지만 그들은 산보다도 뒷풀이에 더 염두에 둔다. 잿밥에만 관심이다. 그러니까 산을 즐기기 위해 산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동창들과 즐기기 위해 산에 가는 것이다. 그들은 일찌감치 하산하여 식사겸 음주를 한 후, 허접한 배낭을 메고 또 다시 노래방을 찾아 욕망의 밤거리를 거닌다. 우리 주위에는 등산복 차람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모여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노래방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자신의 열정을 가열차게 바치고 있다.


이런 동창 모임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 특히 자식뻘 되는 젊은이들이 볼 때 꼴볼견의 전형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심하게 말하면 아저씨 아줌마들의 추태로 보이는 것이다. 중년의 낯 뜨거운 언행은 젊은이들에게 무력감을 주고 기성세대인 동년배에게는 먹칠을 하는 꼴이다. 그들이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중심이 되어야 하건만 그렇게 문란한 언행을 일삼는다면 지탄을 받아도 마땅할 것이다. 단지 일탈만을 추구하는 동창 모임은 더 큰 일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탈은 공허함만 낳을 뿐이다.


사회의 규법과 윤리와 그리고 상식에 모법이 되어야 할 중년들, 특히 초등학교 동창회는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그에 따르는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건전한 동창 문화를 만드는 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이미 다 알고 있을 터, 자신의 욕구를 좀 누그러트리면 손가락질 받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중년은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이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건전한 동창회는 쉽게 만들어질 것이다.


중년의 애환과 팍팍한 현실을 서로 교감하며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한다면 보람있는 동창회가 되리라고 본다. 단순한 즐거움은 길게 가지 못한다. 서로간의 깊은 정서적 나눔이 장년까지 이어가는 근간이 된다. 남자가 보는 중년과 여자가 보는 중년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진정한 인생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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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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