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연락도 없이 우리집에 찾아온 여동생이 들어오면서 한다는 첫마디가 “홀애비 냄새가 진동을 하네...”였다. 나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내 없이 6년 동안 사는데 홀애비 냄새는 당연한 게 아닌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전,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놈과 잠자기 전 이불속에서 장난을 좀 쳤는데, 그 때 녀석이 한다는 말이 “ 아빠한테서 아빠 냄새 나는 거 알아요?”였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뉘앙스는 이미 전부터 냄새가 났었는데 지금 얘기하는 것이라는 투다. 담배 안 핀지 2년이 넘었고, 술도 거의 안마신지 2년이 넘었는데 냄새라니, 그리고 아빠 냄새는 어떤 냄새를 두고 하는 말일까?


녀석은 이 말을 내질러놓고 이내 잠을 청한다. 나는 잠시 냄새라는 단어를 잡아놓고 따져보았다. 예전 할머니 품에서 잘 때, 싫지 않지만 그렇다고 상큼하지 않은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는 그 냄새를 할머니 냄새라고 규정짓고 할머니에게 그렇게 말을 했었다. 할머니는 그냥 웃기만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 있으면 알콜과 니코틴이 혼합된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는 다소 많이 역겨웠다. 어린 마음에 그 냄새가 아버지 냄새라고 규정하고, 때론 당신과 사이가 안 좋을 때 그 냄새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다. 그 냄새는 아버지가 부정적으로 보일 때의 당신 이미지였는지 모른다.


하여, 녀석의 그 냄새는 어떠한 이미지일까? 아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일까 부정적인 이미지일까? 그냥 할머니한테 맡은 그런 이미지일까? 녀석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나는 그 냄새라는 단어에 꽤 집착을 하게 되었다. 그래, 그 냄새는 홀애비 냄새일 것이다. 그런 냄새를 어떻게 표현할 수 없으니 그냥 아버지 냄새라고 애둘러 표현했으리라. 어쨌든 그 냄새가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비록 순악질 아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틀 전, 저녁에 친구들 모임이 있어 가는 중간에 황모라는 친구를 태우고 갔다. 그런데 녀석은 내 차에 타자마자 “야! 홀애비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쯔쯔...”하고 중얼거렸다. 솔직히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담배 냄새가 아직 빠지지 않았나봐”하고 머쓱하게 대답했다.


사실 2년 전까지만 해도 차안에서 담배를 줄창 피워댔으니 니코친이 차안 구석구석 배어있을 것이고, 그런 내차를 타는 사람들은 간혹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을 했었다. 나는 그 이상한 냄새를 니코틴의 잔재라고 우겨왔는데 녀석은 홀애비 냄새라고 능청을 떠는 것이었다. 물론 냄새를 없애기 위해 방향제를 피워놓고는 했지만 오히려 그 냄새를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 하여튼 홀애비 냄새라고 표현한 친구놈이 언잖았다. 농담인 줄 알지만 그래도 농담으로 다 받아주기에는 나의 아량은 넓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들어야하는 현실이 싫었는지 모른다. 홀애비 냄새, 결코 기분 좋은 단어는 아니다.


요즘 흔한 말로 싱글대디가 된지 6년이 되었다. 아내는 저 위에서 내가 아이들과 졸망졸망 사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월래 씻기 싫어하니 잔소리 할 사람 없이 조켔수”라고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왜 물과의 접촉을 내켜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여기서 장황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아내와 이런 쓰잘데기 없는 걸로 토닥거리곤 했었다.


사실 나한테서 나는 냄새는 씻지 않아서 나는 냄새와는 다르다. 그리고 노환으로 냄새가 날 시기도 아니다. 여자만의 특유한 냄새가 있듯, 남자도 혼자 오래 살면 호르몬 등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런 신체적 변화로 인해 인체에서 냄새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나름 힘주어 항변을 해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집에 여자가 있으면 내의와 겉옷 등을 자주 갈아입게 되고, 샤워도 자주하게 되고, 입 냄새 등도 안 나게 신경을 써주기 때문에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하여, 아무래도 여자가 관리를 안 하는 상황이 되면 그런 면에서 조금은 소홀해질 수뿐이 없으리라. 그런 약간의 소홀이 홀애비 냄새의 근원이 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추측이다.


남자가 혼자 산다는 것, 냄새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지, 10년 후 내게서 어떤 냄새가 날지 궁금하다. 그때쯤 아들놈은 나의 냄새를 어떻게 표현할 지, 그리고 친구놈은 내 차를 타면서 또 홀애비 냄새가 난다고 구박을 줄 지, 아니면 어떤 여자가 내 옆에서 냄새를 지워주고 있을지, 글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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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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