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기구 유감

가족 2012. 5. 4. 17:29

아내와 연애하던 먼 시절, 인천 월미도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아주 재미있다는 아내의 호림에 멋모르고 바이킹이란 놀이기구를 탄 적이 있었는데-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여자의 속셈에 당한 것 같기도 하다- 무심코 탄 그놈의 바이킹은 놀이기구 공포증을 낳게 한 원흉이 될 줄은 그땐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밖에서 보기엔 시계추처럼 그냥 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일 뿐인데, 그 안에 막상 타고 있자니 그건 결단코 장난이 아니었다. ‘아주 재미있다’는 아내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시간은 왜 그리 안 가는지, 혹독한 전기 고문이라도 당하듯 눈을 감고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마구 질러댔으니까 말이다. 아내는 서울에 올라 와 헤어질 때까지 나의 그 처연한 모습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연신 놀려댔다. 아자씨, 수색대 출신 맞어? 남자가 간이 콩알만 해가지고 쯔쯔...


아드레날린 분비가 남보다 많은 것인지 아니면 초보여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 그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격한 놀이기구를 싫어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돈을 주면서 왜 그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인간의 변태적 심리를 자극하는 유희라고 나는 아내에게 일갈을 가하였다. 두려움을 벗어 날 때의 희열이 있고, 그 희열의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지만 나는 결코 그 경제적 논리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반론이 비루한 자의 말도 안 되는 궤변인 줄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의 놀이기구 거부증은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갔다. 일 년에 몇 번, 어린이날이나 아이들 생일 때 성화에 못 이겨 집에서 가까운 서울랜드에 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아내와 큰놈은 롤러코스터 수준 정도 되는 격한 놀이기구를 주로 탔고, 나와 둘째는 거의 회전목마 정도 되는 유순한 놀이기구를 타는 게 고작이었다. 참고로 큰놈은 계집애고 둘째는 아들이다. 부전자전, 모전여전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각자 취향과 난이도에 따라 잠시 이산가족이 되고는 했다.


“아빠는 왜 청룡열차를 못 타는 거야?”

“아빠는 왜 바이킹을 못 타는 거야?”


서울랜드에 갈 때마다 큰놈이 나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아빠는 겁쟁이란 뉘앙스가 짙게 배어 있는 말이었다.


“재미가 없어서. 아빠는 회전목마가 아주 재미있거든.”

“아빠는 겁쟁이당. 바이킹도 못 타고... 타봐 타봐...”

“아 글쎄 바이킹은 재미가 없다니까. 재미없는 걸 왜 타냐구...”


옆에 있는 애 엄마는 픽하며 조소를 머금고 거든다.


“결코 무섭다고는 안 하는고만, 민정아, 내비둬라. 아빠는 바이킹 절대 안탄다. 엄만 너무나 잘 알고 있징.”

“아 글쎄 바이킹은 재미가 없다니까 그러네 정말.”

둘째놈도 좀 컷다고 두 모녀에 동조하며

“에이, 거짓말. 아빠는 정말 겁쟁인가 봐.”라고 내심 심각하게 한마디 거든다.

“그럼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야?”

“회전목마.”

짜식 너까지 아빠를 배신하냐. 너도 못타면서...


이런 놀림에 서울랜드에 가면 곤욕이다. 또한 놀림을 당하는 것도 그렇고 두 모녀가 격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기다리는 것 또한 대단한 인내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청룡열차, 은하철도999, 바이킹 등 격한 놀이기구는 왜 그리 인기가 좋은지 어림잡아 한 시간은 나래비를 줄창 서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오래 전, 큰놈이 애기일 때 세 식구가 놀이공원에 가면 아내는 혼자서 신나게 놀이기구를 탔고, 나는 유모차를 그늘 한켠에 세워두고 하릴없이 쭈그리고 앉아 애꿎은 담배만 축내고 있어야만 했다. 아니면 그늘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그 기다림은 처량하고 징그러웠다.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철저하게 봉사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불공평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아내에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일 년 후, 어느 일요일 다시 서울랜드에 갔다. 오지랖 넓은 아내가 집을 비웠고 해서 아이들 돌볼셈으로 그리고 마침 추석 때 받아 짱박아 둔 관광상품권을 써먹을 요량으로 아이들을 모시고 서울랜드로 당당하게 출동을 한 것이었다. 나는 내심 이런 궁리를 했다. 오늘은 아빠의 체면을 세워보리라. 그동안의 수모를 오늘 깨끗이 씻어 보리라고 말이다.


“바이킹 탈래?”


서울랜드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정문 부근에 있는 바이킹을 보며 나는 늠름하게 가슴을 쫙 펴고 일성을 터트렸다. 나의 이 말에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져졌다. 어흠! 자식들 놀라긴.

 

 


하지만, 그곳엔 사람이 너무 많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 많은 사람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은 나에게 없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큰놈의 불만 가득한 얼굴을 뒤로 하고, “대장 말 들어”라는 투로 나는 바이킹에서 빠져나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한번도 타보지 않았던 ‘다람쥐 쳇바퀴’ 놀이기구를 겨우 선택했다. 바로 이거야.


아하! 하지만, 꼬맹이들도 재미있게 타는 그놈은 나를 그만 통째로 잡아먹고 말았다. 좌우로 돌다 획하고 뒤집어지곤 하는 그 놈은 바이킹 이상의 아드레나린을 분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크게 원을 그리는 원심력의 두려움은 참을만 하지만 뒤집어지는 회전의 치도곤은 색다른 공포감을 주었다. 아이들은 재미있다며 다시 타자고 졸랐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곳을 황급히 떠났다.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돌았다.


하여 당초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청룡열차, 은하철도999는 기다리는 시간과 아직 어린 아들놈의 핑계로 겨우 수습을 했다. 큰놈은 피익하며 입술을 석자나 내밀었다. 정말 아빠가 타려는 마음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거의 놀이공원을 한바퀴 돌 즈음에 ‘마술양탄자’인가 하는 기구가 보였다. 바이킹처럼 좌우로 흔들거리다 한바퀴 휙 회전하는 기구였다. 꽤 스릴이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라도 타야 마지막 체면이 설 것 같았다.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큰놈과 그곳으로 무조건 돌진했다. 아빠로서의 마지막 체면을 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온몸에 혼신의 힘을 주며 두려움을 쾌감으로 바꾸려고 한바탕 용을 썼다. 두려운 괴성을 쾌감의 탄성으로 만들기 위해 흐릿한 이성은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았다. 옆에 있는 큰놈의 즐거운 비명이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귀가를 스치고 있었다. 눈을 뜬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직 시간만 빨리 가기를 애원했다.


그리고 다음달 아침, 출근할 때였다. 자동차 핸들을 잡은 팔뚝에 뻐근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알 밴 것처럼 말이다. 왜 그런 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원 참, 얼마나 힘을 주었으면 팔뚝에 알이... 그 때 왠지 알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오래 전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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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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