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의 추억

추억 2012. 5. 3. 09:04

스티브 맥퀸,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빠삐용이란 유명한 영화가 있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니 시놉시스에 대해선 논하지 않겠다. 나는 그 영화를 수없이 봤다. 예전, 처음엔 극장에서도 보았고, 명절 때는 텔레비전에서도 보았고, 비디오로도 여러번 보았다.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수없이 탈옥하다 잡혀 결국 일명 죽음의 섬이란 무인도에 갇힌 빠삐용(스티브 맥퀸)이 드가(더스틴 호프만)와 마지막 이별 포옹을 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그리고 파도를 타고 섬을 떠나는 야자열매 더미 위에서 나는 자유다!라고 소리치는 장면, 또한 말없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친구를 보고 있는 드가의 복잡미묘한 눈물 맺힌 표정, 자유에 대한 끝없는 열망, 하여튼 그 마지막 장면은 전율하듯, 진한 감동을 주기엔 충분하고도 남는다.


각설하고 지금 그 영화에 대해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빠삐용은 빠삐용인데 그 빠삐용이 아니고 감동이라곤 전혀 없는 다른 빠삐용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전 군대 있을 때였다. 우리 소대에 나보다 일 년 정도 고참 중 김모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바로 그 놈의 별명이 빠삐용이었다. 왜 빠삐용인지,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신화가 되어 여타 소대 중대는 물론이고 대대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에 특별하게 물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는 이등병 때부터 탈영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군대 부적격자이고 일명 고문관에 꼴통이었던 것이다. 그런 꼴통을 입대시키는 자체는 국방부의 근무태만이고, 더더구나 전방 전투사단에 배치시키는 것은 전투력 저하가 불 보듯 뻔 한 것이기에 국방부장관이 책임을 져도 할 말이 없는 명백한 사실증명이었다. 북한군이 보면 가소롭게 웃을 일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점호를 취하는데 3소대에서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갓 배치된 이등병 김모라는 녀석이었다. 당연히 중대는 발칵 뒤집혔다. 육사 출신인 중대장은 인사고과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전전긍긍 쉬쉬하다가 다음날 중대 행정관에게 적당히 수습을 하라고 지시했고, 그 능구렁이 행정관은 노련한 사냥개처럼 인천이 집인 녀석을 잡으러 전곡에서 인천으로 출장(?)을 갔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학교 땡땡이 친 개구장이처럼 그렇게 능청스럽게 집에 있었다. 하여 행정관은 녀석의 맥아지를 잡고 함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귀대(?)했다. 물론 녀석의 부모한테 보답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들리는 소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녀석은 다섯 번을 더 탈영을 했다. 그리고 행정관은 녀석의 집에 방문(?)하여 녀석을 데리고 귀대했다. 군대가 문제아 길들이는 곳도 아니고, 하여튼 중대장은 그때마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진급에 영향이 있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중대장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녀석을 끝끝내 버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긴 무기를 가지고 탈영하는 것도 아니고, 탈영하면 별 탈 없이 항상 집으로만 가니 그리고 별다른 말썽은 안 부리니 한편으론 귀여운 구석이 보이긴 했을 것이다.


하여튼 중대장은 녀석의 버릇을 고치려고 자기 ‘따까리’로 데리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녀석은 부대에 적응이 되었는지 언제부터인가 빠삐용 짓은 하지 않았다. 내가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는 녀석은 점잖아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미 전설적인 인물이 된 녀석은 군대생활에 달관한 듯 편안하게 말년을 보냈다.


밤새도록 걷고, 차 훔쳐 타고, 겨우 좃뱅이 치며 서울에 와 인천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말야, 내 주위 사방 3미터 이내에 사람이 얼씬을 하지 않는 거야. 왜 그런가 하고 차장을 봤는데, 나 원 참 내 몰골이 가관이 아니더라구. 이건 완존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무장공비 저리가야야, 야! 정말... 기가막히더라 히히히...


녀석은 짭밥 좀 먹은 후에 이렇게 자식의 탈영담을 능글맞게 늘어놓고는 했었다. 그런 녀석에게서 탈영의 추억이랄까, 어떻게 보면 탈영의 낭만 같은 게 엿보이기도 했다.


녀석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지금도 탈영을 꿈꾸고 있을까. 개버릇 남 못 준다고 아직도 일상에서의 ‘탈영’을 감행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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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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