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현리에서 오전 10시에 마일리로 들어가는 군내버스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날머리인 상판리에서 현리로 나가는 버스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 같아 한 30분 정도 현리에 일찍 도착해 택시를 탔다. 산행시에는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택시를 타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오늘 깨트린 것이다. 고작 30분 때문에 말이다. 아마도 산에서 시간 때문에 부대끼는 게 싫었는지 모른다.


마일리 버스종점에서 시작하는 연인산 들머리는 아직은 한가하다. 7월이 되면 두 달 정도는 피서객으로 북적거릴 것이다. 여름철이면 계곡 어딜 가나 차량과 사람에 치이기는 마찬가지다. 예전 산 친구에게 그런 현상을 보고 '피서 엑서더스'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선량한 등산객들이 더위 하나 이겨내지 못하고 계곡으로 몰려드는 피서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입는 것이냐면서 나는 일장 열변을 토해냈었다. 피서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버스를 잘못 이용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일리 들머리 한적한 들머리
▲ 마일리 들머리 한적한 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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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녹음과 맑은 공기와 그리고 청아한 새소리까지 들려주는 마일리 국순당 계곡은 홀로 가는 산객의 지친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게 고즈넉한 계곡을 따라 힘들이지 않게 전패고개를 향해 오른다.

하늘도 메마르고 땅도 쩍쩍 갈라지지만 이상하리만치 이곳 등로는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만큼 숲의 폭이 두껍다는 방증인지 모른다. 숲에서 발산하는 다량의 산소가 공기 중의 수소가 만나면서 습함을 유지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한번 이루어진 숲은 인간의 욕망이 간섭하지 않는 한 생존본능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잣나무 숲 슈만의 피아노소나타 1번이 들리는 듯...
▲ 잣나무 숲 슈만의 피아노소나타 1번이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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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패고개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주능선 안부를 오르기 시작한다.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빼곡한 숲이 남릉을 따라 펼쳐져 있다. 눈 덮인 겨울에도 크리스마스 추리처럼 포근함을 주던 그 잣나무 숲은 한 여름엔 숨 가쁜 격정을 잠시 잊게 해주며 무언가 내면에서 선함이 울어 나오게 한다.

평온하기로 이름난 이 연인산 우정능선도 세 번의 급경사 구간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된비알이지만 그래도 세 번 용을 써야 한다. 그 정도의 노고도 하락하지 않는다면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산은 가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 최소한 이정도의 힘듬은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인생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은 낮으나 높으나 힘든 구간은 있기 마련이다.

이제 시간도 얼추 지나가고 그러면서 산객은 자신이 목표로 하는 지점에 이른다. 누가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정상에 있을 것이고 또 시간이 지나면 봉우리 너머 저 아래에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시간이 나를 데려다 줄 것이라고. 시간이 조금 늦을지언정 시간은 쉬이 나를 놓지 않는다는 확신이리라.
연인산 정상 연인산 정상
▲ 연인산 정상 연인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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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부에 이르자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백둔리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사실 마일리에서 오르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다분히 의도적이리라. 홀로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그 상황을 언제부턴가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고요한 숲으로의 잠입은 사바세계의 허접한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부 바특이 있는 산상의 쉼터에서 만찬을 즐기고 다시 걷는다. 산행 후 3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지쳐간다. 젊었을 때야 지칠 줄 모르고 산을 올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3시간이 지나면 체력 싸이클이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함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한편으론 슬프다. 산 친구의 즐겨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노쇠한 알피니스트의 비애이다.

정상부에서 출발하여 30~40분 정도 가면 바람의 능선이 나온다. 다리의 힘이 빠져나가고 이제 관성의 힘으로 정처 없이 걸어갈 즈음이다. 여기서부터 아재비고개까지 약 30분 정도의 능선은 지친 산객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구름 위를 걸어보지 않았지만, 편안함을 표현할 때 그런 표현을 쓰듯 내 입에서 구태한 그 표현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바람의 능선 바람소리에 취해 한동안 걸음을 멈춘다
▲ 바람의 능선 바람소리에 취해 한동안 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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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산 친구가 명명한 그 바람의 능선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갈 수가 없다. 그 바람이 나를 잡는 것이지 내가 바람을 잡는 것인지, 나는 바람에 일렁이는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여러 해 전 겨울, 나는 이 능선에서 무릎까지 오른 눈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희미한 발자국 하나 밖에 없는 그야말로 러셀이나 마찬가지였다. 십여 미터 뒤에는 산 친구가 묵묵히 따라오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북풍이었다.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볼을 스치는 바람은 매서웠다. 그 당시에는 앞에서 길을 찾느라 가리사니가 없었던 나는 그 바람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어디서나 만나봄직한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산 친구는 며칠 후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그 바람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했다.

"... 그 바람소리는 참 포근하고 아늑했어. 러셀을 하느라 경황이 없는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게도 나는 그 바람을 음미하고 있었던 거야. 수많은 산을 다녀보았지만 그렇게 평화롭고 아득한 바람소리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 귓가를 애무하듯이 스치는 그 소리를. 너에겐 미안하지만 힘도 안들고 꿈속을 걷듯... 그것도 한 겨울에..."

그래, 나는 산 친구가 느꼈던 그 바람 앞에 그렇게 한 참 동안 서있었다. 공기를 가르는 바람소리와 풀잎과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묘한 앙상블이 되어 나를 붙잡고 무언가 먼 세계로의 여행을 유혹하고 있었다. 저 대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른함이 힘들게 뛰던 심장을 멈추게 했다. 시나브로 내 몸은 나부끼는 바람에 분해되어 허공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머리와 몸통이 날아가고 마지막으로 다리도 바람속으로 사라진다. 모자와 등산복과 등산화 만이 흐드러져 나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바람이 된 것이다.

아재비고개 마지막 분기점인 아재비고개
▲ 아재비고개 마지막 분기점인 아재비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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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바람에 취해 있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얼마 남지 않은 아재비고개를 향해 또 걷는다. 바람은 아재비고개에서 토마토와 오이 한 개씩 먹고 드래골로 내려할 갈 때서야 종적을 감추었다. 그렇게 불멸의 바람과 마지막으로 이별을 한다.

드래골은 길지는 않지만 깊다. 사람이 잘 안 다닌 탓인지 생각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거친 숲과 너덜 그리고 숨막힐 것 같은 침묵은 분명 오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광이다. 그렇다고 길을 잃을 두려움은 없다. 어렴풋하여 잠시 길을 놓쳐 헤매기도 하지만, 크고 작은 너덜 바위에 긁힌 아이젠의 생체기가 나타나 하산길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깊은 골을 헤쳐 나가면 마을이 나오고 곧 버스종점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후 3시 55분이면 어김없이 현리로 나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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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