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2일

연인산(마일리 코스)

홀로 산행

마일리 국수당(9시 40분) - 우정고개 - 우정봉(11시 35분) - 연인봉 정상(13시 15분) - 연인능선 - 전패 임도 -

우정고개(14시 40분) - 마일리 버스 종점(15시 40분)

총시간 : 6시간

거리 : 지도상 12.5km(실제 거리 17km)

새벽에 눈이 내렸다. 온종일 흐렸다. 기온은 영하 4도에서 영상 2도 유지.

 

11월 가리산 산행 이후 2달만에 지방 단독 산행이다. 그 사이 북한산과 우이령을 갔었지만.

 

 

 마일리 버스 종점에서 국수당으로 올라 가는 길. 새벽녘에 내린 눈으로 녹았던 도로가 다시 얼었다. 버스 종점에서 바로 뒤따라 온 관광버스가 20여명의 등산객을 부려놓았고, 난 그들을 헤치고 앞으로 내뺐다.

 

 들머리에 있는 간이 매점. 먹을 건 없다. 기껏해야 라면과 파전과 차 종류.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산객의 외로움을 조금은 달래줄지 모른다. 그 주인의 삶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삶이란 그 개인의 인생이니까. 단지 나그네는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고, 그 인생은 거기에 계속 존재한다.

 

 마지막 민가. 아마도 이 집 주인이 이 들머리 땅의 지주인 것 같다. 탐욕스런 사람은 자기 땅을 막는다. 하여 우회길로 돌아 들머리를 만드는 산이 많다. 특히 공작산이 대표적이다. 여긴 도립공원 정도 되는 산이니 그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게다.

 

 뒤돌아 본 들머리. 그래도 바리케이트는 좀 심하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다. 새벽에 내린 눈을 즈려(?) 밟는다.

 

 앞선 발자국이다. 몇명인 듯하다. 눈길에서 발자국을 따라 간다는 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아직도 새파란 겨울인데 계곡물은 흐르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흐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담스럽다.

 

 무슨 만장처럼 매달려 있는 산악회 꼬리표들. 통영에서도 왔나보다. 참 멀리서도 왔다. 산에 좀 미쳐야지.

 

 앞선 산객. 잠시 후 난 그들을 추월하고

 이렇게 선등을 하게 된다.

 한시간 정도 되자 우정고개가 나를 반긴다. 뿌연 운무가 몽환적이다.

 나를 따라 올라오는 아까 그 산객.

 우정고개의 이정표.

 

 연인산은 아직도 4.3km. 이제 부터 사투는 시작된다. 좋은 시절은 끝났다. 메인 이밴트.

 

 눈꽃을 피운 잦나무들과 눈 덮인 능선. 저 능선을 따라 가고 또 가야 한다.

 

 이건 누군가?

 

 운무에 침잠해 있는 산. 이런 산에 홀로 가게 되면 아래와 같이 변한다.

 

                   이렇게

 

                   또 이렇게. 거 참 괴이하도다.

 

 앞선 발자국은 없다. 내가 러셀을 하는 불운을 오늘도 겪어야 한다. 팔자 참 거시기 하다.

 

 눈길을 만들며 가고

 또 가다 보면

 

 이렇게 목적지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정봉이 지척이다. 조금만 가자꾸나.

 

비탈진 능선에 선 고사목. 매서운 눈보라에 잘도 버티고 있구나. 넌 여기에 왜 서 있는 거니.

 

드디어 우정봉.

 

                   뒤따라 온 산객에게 부탁해 한 컷.

 그나마 우정봉까지는 태평성대였다. 이제부터 눈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언제던가, 두타산에서의 러셀. 그래도 그때는 세명이었다. 그리고 명지산에서도 뒤에 여러명이 따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다. 이 눈덮인 1000미터 능선에서 믿을 건 오직 나뿐이다. 사실 제정신으로 홀로 이런 산을 가지 못한다. 살짝 미쳐야지.

 

 아예 사람의 흔적이 없다. 새벽에 내린 눈이 북풍을 맞으며 능선을 덮어버렸다. 분명 이 능선이 길이지만, 눈을 헤치며 가야 하는 노고를 산객은 운명처럼 감내를 해야 한다. 대자연에 동화되기 위해선 노고를, 한 줌의 호흡까지 토해내야 하리라.

 이젠 지친다. 아무도 없다. 두렵지 않은가.

그래 두렵진 않다. 홀로,눈 덮힌 산에 고립되어 있다는 상황을 인식할 때 공포가 엄습해 온다. 여기서 부상을 당하여 탈진을 하는 경우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하여 컵라면을 먹으며 잠시 고민을 한다. 정상까지는 900미터. 900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길이 어떠한지 확인할 수 없다. 보다 더 상황이 악화되고 그러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탈진을 하게 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하리라. 후퇴? 하지만 그때 나이 지긋한 사내를 필두로 여러명의 등산객들이 이리로 오고 있다. 여자도 있다. 그 사내는 내가 러셀을 해주어 고맙다고 너스레를 떤다. 하여 힘을 낸다.

 

 다시 선등을 하며 앞을 나선다.

 눈구덩이에 빠지고 악전고투를 하며 앞으로 가다 보면

 이렇게 이정표가 나온다. 200미터. 이제 살았다. 최소한 최악은 벗어났다. 여기서 부턴 연인계곡에서 올라온 많은 발자국들이 내 앞길에 선명하다.

 

 

 드디어 정상.

                   고생했다.

 

 

 정상부의 운무와 설화 그리고 몽환.

 

 겨울산의 백미

 연인능선을 눈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전패골 삼거리. 여기서 잠시 길이 헷갈렸는데,다행히 뒤따라 오던 아까 그 사내를 다시 만나는 바람에 길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용추계곡길

 우정고개로 가는 임도. 오른쪽 잦나무 숲에는 비박촌이 형성되어 있다. 흔히들 비박이라 하는데 엄밀한 개념으론 비박이 아니라 야영이라고 불리어야 옳다. 비박이란 산행 중 피치못할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산속 적당한 곳에서 하룻밤 대충 지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산행이 목적이며 비박은 수단인 것이다.

 

마일리 버스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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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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