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령에 가면...

산행 2012. 5. 23. 12:54

한계령을 바로 넘다보면 오른쪽으로 난 샛길이 있다. 지금은 아스콘으로 포장이 되어 있지만 20년 전에는 비포장이어서 그 들머리가 쉬이 눈에 띄지 않았었다.


한계령이 암릉으로 이루어진 고개이기 때문에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나무 몇 토막으로 입구를 가로막아 놓았다면 그곳이 차도인지 산판길인지 등산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당시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간혹 등산지도에 필례약수, 필례령이라는 위치명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었다. 막연히 가고 싶었다. 


하여튼 그 길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설악의 거대한 암릉세계와는 전혀 다른 평온하고 아늑한 길이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고, 그 길은 내리천에서 만난다.

 

 


하늘같은 설악을 앞에 두고, 양 옆으론 점봉과 가리봉이 설악을 호위하듯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사이를 비집고 샛길이 나 있는데, 남성적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다소 거친 주위의 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은밀함이 설악의 위용에 압도 되어 있는 나그네의 마음을 순간 안정시킨다.


누가 이 길을 만들었는지 옛 선조의 혜안과 멋에 감탄을 하고 그 노고에 후세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어느 누가 한계령으로 가려고 이 길을 냈던가.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산촌 사람이 첩첩산중 이 길을 이용하겠다고 노동을 감수했단 말인가. 소통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우렸는지 새삼 그 노역에 고개가 숙여진다. 인간이 존재함으로서 길이 있고, 길이 존재함으로서 인간이 있다.


그 길은 일명 은비령이라고 한다. 월래 이름이 필례령이었는데,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이란 작품 제목이 유명세를 탔고, 그 소설이 만들어준 은비령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길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소설이 만들어 준 특이한 케이스의 길 이름이다. 우리나라에 문학과 연관된 길 이름이 이 말고 다른 곳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문명의 이기로 가득 들어차면서 길도 넓혀지고 아스콘으로 포장이 되어 예전의 분위기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길은 지금 세상과 맞게 그 깊은 산중에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길의 포장이 아니라 내용이다.


한계령에서 그 길을 따라 4키로미터 정도 내려가면 필례약수터가 나온다. 설악에 열등감이 있는 오만한 가리봉 그 산끝 기슭에 조용히 숨어 있는 모습이 마치 심산수곡 암자의 법접치 않은 자태 같기도 하다. 길가에 작은 이정표가 없으면 여지없이 그냥 지나 칠 게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들어내지는 않는다. 물맛과 성분은 중요하지 않다. 깊은 산속 울창한 숲과 그 대자연이 발산하는 침묵에 그저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끼게 된다. 텅빈 큰 성당에 홀로 앉아 있는 듯 어떤 신앙적 기운이 침잠해 있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일 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곳에선 이상하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떠들면 무언가 크게 흔들릴 것만 같고 어디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자각이 자신도 모르게 의식을 지배하니까. 그러한 분위기에선 대처의 상념들은 깨끗이 씻겨져 사라진다.


그 공간이 자기만의 작은 도량으로서 내면에 존재함을 자신도 모르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름이면 더욱 그렇다.


지금은 그곳에 식당도 있고 숙박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다고 한다. 약수 한 사발 마시고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요기를 한다면 신선도 부럽지 않을 게다. 그리고 하룻밤 묵는다면 금상첨화일 게다. 자연의 고요가 무엇인지 당신의 가슴으로 흠뻑 적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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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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