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역국을 안 좋아한다. 젊었을 적에는 극히 안 좋아했다. 안 좋아한다는 것은 안 먹는다는 것은 아니고 소극적으로 먹는다는 뜻이다. 못 먹는 게 아니고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결코 알르레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어느 곳에서든 미역국이 밥상에 나오면 본 채 만 채 했다. 하지만 군대에 있을 때는 사정이 좀 달랐다. 배고픔은 무엇이든 먹게 한다. 궁핍은 인식을 지배한다. 특히 훈련 나가 야전생활을 할 때는 안 먹고는 못 배겼다. 배고프니까. 배고픔 앞에 무너지는 나를 보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처절하게 감내했다. 그래도, 소고기 미역국은 모래 씹듯이 대충 넘겼지만, 닭고기미역국이란 놈은 아무리 허기가져도 결단코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닭고기 또한 미역국처럼 싫어했으니까. 참 입 별났다.

<출처: 어느 까페>

그리고 생일날이면 밥상에 올라오는 미역국을 보면서 꼭 이것을 먹어야하는지 나의 이성은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미역국이 생일상의 주메뉴가 되어야 하는지, 그런 풍습을 왜 지켜야하는지, 먹기 싫은 미역국을 왜 먹으라고 하는지, 하여튼 나는 미역국을 끓이는 아내에게, 그런 구습을 좇는 행위에 대해 의식의 전환을 요구했으며, 그런 구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기성세대에게 경멸을 표하기에 이르렀다. 아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먹기 싫으면 먹지 마셔, 애들하구 다 먹을랑께.”

아내의 성의가 무서워 나는 먹는 시늉만 한다. 그것도 오래전의 얘기이다.


미역국을 멀리하게 된 원인을 찾으려면 꽤 많은 시간을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막내동생이 태어날 때였으니까, 아마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9월 어느 날, 나는 학교를 파하고, 대문 위에 걸려있는 고추 달린 금줄을 보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 때 집안에서 역겨운 냄새가 내 코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젖비린내와 미역국이 혼합된 매우 역한 냄새였다. 현기증이 나고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왠지 모르지만 그 냄새가 먹지 말아야 할 음식 1호로 나의 뇌 속에 각인되었다. 그 역한 냄새는 평생 동안 나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방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그 각인이 마모가 되어, 고기 종류를 넣지 않고 순수하게 미역으로 만든 국은 먹는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만들어 먹지는 않았다.


유난히 미역국을 좋아했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에 우리집에서는 그 후  절대 미역국 냄새가 나는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미역국을 좋아했던 아이들도 미역국 구경은 하지 못했다. 아빠가 싫어하는 미역국을 바란다는 것은 언감생심임을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드디어 미역국을 끊였다. 두 달 전이었다. 6년 이상 보지 못했던 미역국을 내가 손수 만든 것이다. 기적이었다. 의식의 대전환이었다. 왠지 미역국을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이기에 해주고 싶었다. 물론 이타심의 발로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내면에 존재하는 아집이 녹아가고 있는 현상의 결과였다. 고집스런 관념의 타파이리라.


그리고, 2주 전 부모님과 동생네 식구들하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무슨 얘기를 오고가다가,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놈과 고모가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 학교에서 미역국 나오면 못 먹어요 ”

“ 너 미역국 좋아하잔아?”

“ 아니오 못 먹겠어요. ”

“ 왜? ”

“ 아빠가 해준 미역국을 일주일 동안 먹었더니... 질려서... 못 먹겠어요.”


여동생은 나를 쏘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 미역국을 어떻게 일주일 동안 먹이냐 참...”


얘들을 사육하냐는 투다. 나는 겸연쩍게 웃을 수뿐이 없었다.


사실은 이렇다. 나는 한주일 일용할 음식을 일요일에 한꺼번에 만들어 놓는다. 직장에 다녀야 하는 관계로 매일 반찬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그 미역국을 끊인 시기가 봄방학이 끝나갈 마지막 주일이었다. 방학 때는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먹기 싫어도 집에서 먹어야 한다. 물론 집에 엄마가 없으니 자기네들 내키는 대로 하겠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밥을 먹을 수뿐이 없는 상황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들의 생존방식이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아빠는 그 주에는 거의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왔고, 대학생이 될 누나도 공사가 다망하여 매일 늦게 들어왔으므로 당연히 그 많은 미역국을 홀로 해결했으리라. 일주일 동안 말이다. 내가 만든 된장이 주된 다른 국들은 신뢰하지 않아 먹으라고 잔소리를 해야 마지못해 먹었는데, 예전에 좋아했던 미역국이 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허면, 먹지 말던지, 다 먹어놓고 이젠 질려서 미역국을 못 먹겠다는 심보는 무언가. 지가 좋아하는 미역국 실컨 먹었으면 좋은 거 아닌가. 아들놈의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배신감이 일었다. 미역국 일주일 먹었다고 배신을 때리다니, 참을 수없는 아들의 가벼움에 아빠는 슬픔이 저미어온다.


하여튼, 이제 우리집에선 당분간 미역국을 보지 못할 것 같다. 미역국 한번 먹어보자고 가열차게 의식을 쇄신하여 양양하게 만들었는데, 의욕이 지나쳤습의 결과이리라. 그래도 어느 날 또다시 미역국에 대한 애정이 끓어오를 때 나는 그 욕구에 충실할 것이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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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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