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사색 2017. 3. 17. 13:50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주일 미사를 마치고 한가롭게 성당을 빠져나오고 있을 때 친구 K의 아내 H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마트폰에 찍힌 그녀의 이름을 보자 순간 직감적으로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덜컹 주저앉은 가슴을 잡고 나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아침에 갔어요..."

낮고 느린 그녀의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다 끝났지만 나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더듬더듬 장례식장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난 2006년 2월이었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그리고 해병대 출신임을 늘 자랑스러워하던 K는 그해 처음 쓰러졌습니다. 집안 내력인 뇌출혈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춘천에서 살다가 서울로 발령을 받고 이사 온 후 몇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처음 서울에서 결혼한 후 강릉에서 5년, 춘천에서 10년 그리고 원래 살던 서울로 올라와 이제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안정되어 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녀는 왕십리 모 대학병원에 남편을 입원시켰습니다. 부근 동네에 방 하나를 얻어 좀 쉴 공간을 만들어 놓은 그녀는 2개월 동안 중환자실과 숙소를 오가며 병원에서 유명할 정도로 극진하게 간병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다시는 의식을 찾기 힘들다고 했지만 K는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적처럼 눈을 떴습니다. 모두가 그를 포기했지만 그녀만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도 불가사의하다고 놀라워했습니다.

K가 쓰러지기 전에는 사실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비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결혼 20년 정도 되자 자연스럽게 찾아온 갱년기가 원인이었는지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하나둘 표출되어 다투는 날이 잦아졌고 남편은 자연히 집을 등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로 감정의 골은 깊어갔습니다. 그들의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습니다.

K는 중환자실 2개월 포함 5개월 동안의 병원 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회사를 다시는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겐 삶에 대한 긴장감이 해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시간만 나면 그는 동네 공원에 나가 어르신들과 바둑을 두고, 시시때때로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을 만나러 다녔으며, 집에 있을 때는 수시로 무언가를 찾아 집안 정리를 하였고, 별로 진척되지는 못했지만 어떤 작은 가게라도 해볼까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그를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로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들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술과 담배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비록 정신의 끈이 느슨한 실업자로 변해 있었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심한 갈등을 겪으며 지나왔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변하였고, 현재의 상황은 경제적으로는 부족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만족했던 것입니다. 다투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집에 매여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2월 그녀가 친구들과 태백산에 등산 가기로 한 며칠 전에 K는 또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술 담배를 하지 말아야 했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그에겐 인생의 낙이 없는 것이기에 그녀도 두 손을 들고 있었는데, 결국 그 무딘 의지력이 조금은 여유로웠던 시간의 소멸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온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다시 길고 긴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상태가 치명적이었습니다. 양쪽 대뇌가 거의 손상될 정도로 출혈의 정도가 너무 커서 의식이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신체기능을 어떡하면 더 악화시키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의식은 중지되었지만 그렇다고 뇌사상태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병원 옥상에 올라가면 바특이 북한산이 보입니다. 그녀는 늦은 오후가 되면 옥상에 올라가 해가 넘어가는 북한산을 보는 게 하루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특히 가을녁 황혼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연출하는 인수봉와 백운대와 만경대 즉 삼각봉의 자태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그 풍경을 매일 마음속에 찍어놓았습니다. 이젠 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프시나마 느끼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6개월이 지났지만 K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병원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할 것이 없다면서 퇴원을 요구했습니다. 더 이상의 의학적인 치료가 불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치의는 요양원을 권했습니다. 식물인간과 다름없는 환자를 집에서 간병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드는 일이니 요양원에 보내는 게 당연한 현실적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전혀 의식이 없고, 한쪽 팔다리를 무의적으로 조금씩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의 환자를 집에서 돌본다는 것은 그들이 보기엔 상상 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요양원 행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요양원에 보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힘들더라도 자신이 직접 돌보아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무모한 방향으로 인도한 그런 힘이 어디서 발화되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나타난 그 어떤 힘에 그저 자신을 맡겼는지 모릅니다. 그건 숙명이었습니다. 그래 잘 될 거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먼저 의료기 전문업체에서 의료용 침대와 공기 매트를 임대하고 썩션기와 간단한 간병용 기구들을 구입하여 안방에 다 배치를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기구들을 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그녀는 그럴싸한 일인용 병실을 만들었습니다. 침대 머리 맞은편에는 남편이 좋아했던 동해 바다 그림을 걸어놓았습니다.

먼저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식사였습니다. 의료기기 판매 업체에서 구입한 액상 유동식 팩을 침대 머리맡에 링거처럼 걸어놓고 코에서 위까지 연결된 튜브를 통해 주입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온갖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는 유동식은 아이들 이유식처럼 밀도가 높은 액상이었는데 호기심으로 한번 맛을 보니 입으로 먹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맛을 느낀다는 건 참 행복한 것입니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처치는 기도에서 발생하는 가래를 제거하는 썩션이었습니다. 목에 천공을 한 후 삽입하여 고정해 놓은 기관지 삽관에 썩션 호수를 주입하여 진공전동펌프의 동력으로 가래를 빨아내는 처치인데, 세균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호수를 항상 식염수에 담가 두어야 하고 사용할 때도 양손에 비닐장갑을 착용해야만 했습니다. 가래가 폐로 넘어가면 면역력이 미미한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급성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가래가 목에 차면 숨 끓는 소리가 나고 그때마다 썩션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런 증상은 불규칙적이어서 한시라도 환자 곁을 떠날 수 없었으며 바깥일을 볼 경우에는 한 시간 이상 집을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시간의 개인적인 외출은 아들이 쉬는 주말에야 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매일매일 수건으로 전신을 닦아주었고, 매주 일요일이면 아들과 함께 환자를 거실로 옮겨 놓고 목욕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큰 타월을 바닥에 깔고 누인 후 화장실에서 물을 대야로 나르며, 머리를 감기고, 적신 수건으로 닦고 비누칠을 하고 행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수건으로 말끔히 다듬어주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머리를 감기려고 왼손으로 환자의 머리를 들 때 환자가 살짝 들어 올려주었으며, 목욕이 다 끝나고 침대로 가면 기분이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간병인으로서의 주관적인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느낌을 감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금방 무슨 말을 할 것만 같은, 정말 감각을 느끼고 있는지... 그녀는 그렇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간병이 시작되고 3년이 지날 무렵, 햇살 좋은 10월 어느 주말 어느 덧 서른 살이 된 아들이 5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했습니다. 물론 예식장에는 그녀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하객들이 와서 그녀를 위로했고 혼인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나마 그동안 아들이 있어 힘이 되어주었지만, 그녀는 아쉬워하지 않고 처음처럼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남편의 상태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썩션하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잦은 처치로인해 기도 표피가 헐어 출혈이 발생했으며, 기침을 하면서 피가 각혈처럼 토해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놀라서 입원했었던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별다른 치료는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도 특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 출혈 후 시간이 갈수록 그 간격이 좁아졌고 출혈량도 많아졌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담담하게 피를 닦고, 옷과 침대 시트를 갈고 청소를 했습니다. 여전히 남자는 하염없이 먼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세포 분열하듯 확산하여 텅 빈 집을 가득 메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침묵은 시간을 못 가게 잡아놓고, 바퀴벌레처럼 온 집안을 기어 다니며 때론 그녀의 영혼 주위를 맴돌다 어느 순간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곤 했습니다. 그녀에겐 방어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침묵에 노출된 자신을 발견한 후 엄습해 온 것인 바로 지독한 고독이었습니다. 이 세상엔 자신 혼자였습니다. 고립된 이 공간은 무덤처럼 깊은 침묵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한번 남자와 치도곤을 치루고 나면 그날 밤은 오한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불을 아무리 많이 덮어도 몸은 오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때론 등에서 불타듯이 열이 나고 바늘로 쿡쿡 찌르는 통증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오후가 되면 친정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말벗이 되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신은 집에서 홀로 환자와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딸을 안쓰러워하며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했습니다. 차마 포기하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동생은 이제 그만하고 매형을 요양원에 보내라고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할 만큼 했으니 여한도 없고, 누나 건강도 생각하고 매형을 그만 놓아주라고 했습니다.

힘들고 지치더라도 그녀는 사람들한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친지들이나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항상 그렇듯 밝고 명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힘들더라도 의연해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남들이 이제 포기하라는 뜻을 넌지시 비칠 때도 그녀는 귀담아 듣지 않고 마지막까지 갈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억누르고 오늘 하루에 충실하자고 다짐을 했지만 이제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올 때, 불현 듯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곤 했습니다. 이 상황이 진정 남편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자유를 내가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떠나고 싶어 하는 그를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끈을 놓아주고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가기를 바라는 게 옳지 않을까. 내가 진정 그를 사랑하여 영원한 이별을 거부하는 것일까. 그렇게 나의 사랑이 강한 것일까. 누가 말한 것처럼 미저리 같은 집착은 아닐까. 남들한테 나에 대한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한 위선은 아닐까. 이 모든 사유가 이 상황에서 해방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궤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여름이 다가오자 남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제 기차는 얼마 남지 않은 종착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이별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작별을 준비한다는 것, 아직도 그녀는 문을 열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추석은 다가왔습니다. 당일에 친정엄마와 남동생이 찾아왔으며, 다음날은 시동생 내외와 해병대 입대한다고 하는 조카가 방문하였습니다.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위로하고 돌아갔습니다. 집은 또다시 텅 비었습니다. 그녀는 남자가 있는 방으로 시선을 천천히 돌렸습니다. 맑고 투명한 햇살이 남자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남자는 소박했던 소풍을 접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한줌의 재로 변한 남자는 그녀의 손에서 나부끼며 인천 어느 바다에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햇살 좋은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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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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