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박수근, 고흐, 고갱, 베르메르, 이들의 공통점은 물론 화가이다. 그것도 그저 그런 화가가 아니라 미술사에 한획을 그은 불세출의 전설적인 화가들이다. 박수근은 한국 최고 경매가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고흐는 독보적인 세계 최고의 경매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도 그 명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고수들임을 세상이 공인하고 있다. 누가 더 위대하고 능력이 있는가는 무의미하다. 각자 고유의 화풍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세계의 지존이기 때문에 비교한다는 것은 신성 모독이며 무뢰한 짓이다.

 

이들에겐 시공을 떠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궁핍이다. 살아 생전에 지금 팔리는 금액을 인정 받았다면 그림 한 점으로도 평생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며 여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불행하게도 생전에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그들의 그림은 당대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붓을 놓지 않았다. 집안에 재산이 많다던가 금전적으로 밀어주는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의 일상은 가난과 질병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삶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예술 중에서 음악과 문학 등은 당대에 빛을 내고 평가를 받으며 동시에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하지만 유독 미술 세계에서는 후대에 와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위에 열거한 화가 이외에도 많은 화가들이 다음 세대에서 인정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시대에 따른 시각적 미학의 변화에 있지 않나하고 짧은 소견을 피력해 본다.

 

하여튼, 그들은 사회적으로는 낙오자였다. 생활인으로서 그들은 룸펜과 다름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일본인 아내와 아들 둘을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외롭게 기러기 생활을 했으며 변변한 화구 하나 살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다 그림을 그려야 했던 이중섭, 어느 미국인에게 금같은 물감을 지원 받아 겨우 그림을 그렸으며 그 보답으로 지금은 몇십억을 호가하는 그림으로 보답해야만 했던 박수근, 시골 촌구석에 쳐박혀 자기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고 동생의 도움으로 판자집에서 근근히 살아야 했던 고흐, 서른 중반에 잘나가던 증권회사 때려치우고 처와 4남매를 버린 채 궁색함을 자초했던 고갱, 지방 소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11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뒷바라지를 하며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붓을 들어야 했던 베르메르, 그들은 어느 누가 보아도 현실에 적응 못하는 낙오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미술계에서도 그들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 고집스럽게 움크리고 있던 지독한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궁핍과 아웃사이더의 상황을 만든 것은 자의적이었으며 그들이 자초한 것이다. 적당한 유연성만 있었더라도 그들은 그런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게 분명하다. 인맥을  활용하여 교사나 교수를 할 수도 있었고, 돈 많은 사람들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고 당시 조류에 맞추어 적당히 그림을 그리고 판매를 위해 로비도 하면서 타협을 했다면 그들의 능력으로 보아 결코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의 열정은 어느 누구보다도 뜨거웠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 같은 범인은 이해할 수가 없다. 한끼 밥을 걱정하기도 벅찬 현실에서 그들은 붓을 놓지 않고 오히려 상상력을 극대화시켰으며 영혼을 파괴하면서 그림에 몰입했다. 미치지 않고선 그런 상황에선 영감이 솟구치지 못한다. 그래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예술은 궁핍에서 태어나는 것일까. 인간은 참으로 기괴하고 불가사의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도대체 예술은 무엇인가. 도대체 예술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돈이란 그들에게 무엇인가. 그들은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을 미치도록 그려야만 했을까. 지금은 돈 많은 애호가들의 소장품이 된 그들의 작품들, 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러니하다.

 

그들은 그나마 오래 살지도 못했다. 그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이 고갱인데 그것도 50대 중반이다. 가난은 질병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영혼을 죽음에게 팔아 먹으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으니 그 혹사를 이겨낼 장사는 없다.

 

현재 우리는 그들의 그림을 감상하며 그 작품성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휘몰아치는 혹독한 한파를 이겨내며 그린 그 영혼의 작품을 말이다. 궁핍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 위대함에 경외를 표해야 할 것이다. 지독한 가난과 싸우면서도 미치도록 그리고 싶은 욕망에 충실했던 그들의 영혼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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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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