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휴전선 155마일이라고 한다. 그 거리를 ㎞로 환산을 하면 250㎞이고, 남쪽 관할 폭이 2㎞이니까 면적은 500㎢인데, 들쑥날쑥한 폭을 정밀하게 따져서 계산하면 정확하게 570㎢다.

여의도 크기와 비교해 보면, 그 면적이 2.9㎢이니까 여의도보다 약 197배 크다. 그리고 남한 면적이 99,720㎢라고 한다. 그러면 비무장지대는 남한 면적의 약 0.57%가 된다. 그리고 서울 면적과 비교해 보면 570㎢/605㎢이니, 서울 크기의 약 94% 즉 서울 크기와 거의 같다는 결과가 나온다.

만리장성은 길이 면에서 보면 세계 최고지만, 비무장지대를 울타리라는 개념으로 보았을 때는 감히 비교가 안 된다. 북쪽과 남쪽 각 2㎞, 즉 폭 4㎞에 길이 250㎞의 울타리라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만리장성은 인류문명사에서 그리 자랑할 만한 구조물이 될 수 없게 된다.

비무장지대는 그렇게 위 아래는 철책으로, 양 옆으론 바다로 고립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완벽한 울타리다. 영어로 'barbed wire fence'라고 하듯 철책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강하며, 다람쥐 이상은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다. 아마도 인간이 만든 가장 크고 견고한 고립지대일 것이다.

만리장성처럼 몇 백 년이 지난 후 이곳은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등재될지도 모른다. 서울 크기 만한 그곳에 바다의 암초처럼 삐쭉 솟은 GP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북쪽을 보고 있다. 그 GP에도 견고한 이중 철책이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고립의 최정점인 그 안에 사람이 산다.

요 몇 년 사이 군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복지 시설 확충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지금은 각 GP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펌프도 설치되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게 했다. 또한 컬러텔레비전, 비디오 등 문화시설도 완비시켰다. 더구나 우리 GP는 2년 전에 신설되었기 때문에 쾌적하고 견고한 벙커와 욕탕과 샤워기를 겸비한 호텔식(?) 목욕탕 그리고 깔끔한 환경의 취사장과 식당과 운동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전파를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다. 단지 교육용 비디오로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페바에 있을 때는 자유롭게 채널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외부와의 통신은 일절 차단되어 있었다. 물론 방송병에게 라디오는 있었지만 그것을 이용해 외부 세계와 소통을 원할 정도로 우리는 정보에 목말라 하지는 않았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세계에 몰입하는 게 현명한 생존 방법인지 모른다. 이반 데니소비치도 그랬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 GP가 문화적인 측면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GP에는 우리에겐 없는 선임하사들이 있어서, 매주 외박을 나가는 그들이 각종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관람을 한다는 기가 막힌 사실, 더구나 일명 문화영화로 칭하는 포르노 비디오도 밀반입된다는 팩트가 우리 GP에 확 퍼졌다. 우리는 경악했다. GP장을 향해 우리는 왜 선임하사가 없냐면서 결기를 세우고 성토를 했다. 피 끓는 청춘들의 아우성이었다.

전기 없이 살 수는 있지만 물 없이는 못 사는 게 인간의 생존 법위이다. 2년 전, 이등병 때 일명 개나리라고 하는 땅굴 예상 지역에서 두 달 정도 생활했었는데 그곳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고정된 부대가 아니라 작전의 특성상 임시로 만든 부대였기 때문에 막사는 양철로 된 콘센트막사였고 전기도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터전을 목적으로 막사는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 인근에 만들어졌다. 그 계곡물을 모아 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매일 먹고 씻고 빨면서 사계절 알뜰하게 사용을 했다. 겨울엔 밤새 언 계곡 얼음을 깨고 또 깨고 하면서 물을 지켰다. 그나마 산봉우리로 물을 질러 나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초여름에 접어들던 6월 중순, 이제 비무장지대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겨울과 여름은 길었고 봄가을은 짧았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100㎞도 안 되는 거리인데도 이곳은 유난히 춥고 더웠다. 겨울은 북풍한설 만주벌판처럼 춥고 길었으며, 여름도 아열대성 기후를 능가할 정도로 덥고 길었다. 지역의 특성상 체감온도가 낮고 높은 것이 아니라 실제 온도계에 나타나는 기온이 그랬다. 말로만 듣던 영하 30도, 내 눈으로 확인한 가장 낮은 온도는 정확히 영하 27도였다.

아까운 줄 모르고 귀하디 귀한 물을 펑펑 쓴다고 DMZ신이 노하셨는지 어느 날 갑자기 단수가 됐다. 확인한 결과 GP 아래 계곡 급수장에 있는 펌프가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CP에 알렸다. 동기인 CP 보급계 최병장은 최대한 빨리 AS를 보내겠다고 흔쾌히 대답했지만 녀석의 전력으로 보아 의심이 드는 것을 속일 수 없었다. 하여튼 뭔가 찜찜했지만 속는 셈 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비상용으로 저장해 놓은 물탱크의 용량으로 보아 아무리 아껴 써도 3일이었다. 우린 그날부터 절수를 시작했다. 빨래와 목욕금지는 물론 대원 1명 당 세면용으로 하루에 한 바가지 정도 급수하는 긴급조치를 단행했다. 물론 식수도 제한했다. 물 담당은 취사장 오일병이었다.

하지만 3일이 지나도 역시나 AS는 오지 않았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최병장을 닦달했다. 녀석은 항상 그렇듯 천연덕스럽게 며칠 더 있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럼 물차라도 보내야 할 거 아냐!"
"그것도 알아 봤는데 물탱크 트레일러를 달고 지프차가 거기까지 갈 수 없대. "
"왜?"
"힘이 딸려 무리하게 가다가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거야. 거기 지형을 봐라. 너도 알잔아."
"그럼 우리 보고 어떡하라고?"
"머... 길러서 해야 하지 않을까... 며칠이면 될 거 같은데..."
"머? 길러서?"

그래도 우리는 버틸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한여름 씻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게 고역이었지만, 사실 페바에서 훈련 나갈 때면 일주일 제대로 씻지 못하는 건 보편타당한 현상이었다. 특히 겨울철 훈련 때는 물을 구할 수가 없어 거의 씻을 수가 없었다. 중대 인사계가 그랬다. 그것도 훈련이라고. 한여름 일주일 동안 빨지 않고 땀에 절은 뻣뻣한 군복을 입고 있어 보라.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신비로운 냄새를 경험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건 페바에서의 일이고 여긴 상황이 달랐다. 현재의 우리는 쾌적한 근무환경을 필요로 했다. 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런 씻는 문제로 사기저하를 유발하는 것은 군 전력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런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물을 펑펑 쓸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력하게 최병장에게 주장한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가장 적응력이 강하다고 자부하던 나도 하루 하루가 고역이었다. 상의를 벗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웠지만 우린 씻을 수가 없었다. 내일이면 이빨 닦을 물도 배급 받을 수 없을지 몰랐다. 물당번 오일병은 독하게 물을 지켰다. 녀석이 야속했다. 왕고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해결 방법은 한가지뿐이 없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단순하면서 확실한 방법이었다. 바로 급수작전이었다. 최악의 경우 물을 길러야 할 수뿐이 없지 않겠는가라는 최병장의 말이 현실이 안 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은 설마 물을 길러야 한다는 상황에 직면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니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고 잘 할 건데 뭐라며, 녀석은 시치미 뚝 떼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우리는 다음 날 제리캔과 물통이 될 만한 통을 가지고 취수장으로 내려갔다. 물론 그것도 작전이기 때문에 우린 전원 무장을 했다. 취수장은 GP에서 한 10여 분 내려간 계곡 끝머리에 있었다. 샘물을 파서 만든 저수장엔 맑고 시원한 물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 물을 보자마자 우린 고참 쫄병을 망각하고 그 물에 달려들었다. 무슨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했다. 우리는 잠시 여기가 비무장지대라는 것을 잊고 서로에게 등목을 해주며 물에 탐닉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후 그 오아시스를 뒤로 하고 다시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20리터짜리 제라캔과 플라스틱 말통을 매고 GP까지 올라갔다.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올라갈 때 보니 경사가 아주 심했다. 더구나 소총까지 매고 20㎏짜리 물통을 짊어졌으니 속도가 제대로 날 리 만무였다. 내려올 때 10분이 올라갈 때는 30분이었다. 씻었던 몸은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매일 자고, 먹고, 경계근무 만하는 생활을 3개월 가까이 했으니 말이 수색대지 몸은 두더지처럼 벙커를 벗어나지 않는 방송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에 한 번씩, 세 번을 더 한 후 드디어 펌프가 수리되었다. 우리는 그날 기념으로 목욕탕에 물을 가득 담아 신나게 샤워파티를 벌였다. DMZ 신이 또 노하시어 다른 벌을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 겨울이 되면 물과의 전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우리 소대가 올 겨울에 GP로 다시 투입될지는 모르지만, 겨울의 적은 바로 물이라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취수장 물과 급수배관이 영하 20도 이하에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GP에서 펌프장까지 가는 산길을 해빙해야 하고, 매일 물을 길러 날라야 하는 노역을 견디어 내야 한다.

물론 샘물이 계속 솟아 얼지 않고 흘러가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제대로 씻지 못한 대원들의 몸엔 이가 버글거릴 것이고 또한 벙커 안에는 사파리처럼 방목된 벼룩들이 날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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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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