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운동 경기 중에 규칙이 가장 복잡한 종목은 야구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들어낸 운동 경기 중에서 야구가 가장 복잡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사실 야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 규칙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만 경기를 이해할 수 있고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접하기가 쉽지 않다. 축구 농구 등은 본능적으로 규칙을 알 수 있고 다른 종목들도 그냥 보고 있으면 어떠한 룰로 움직이는지 감이 오지만 야구는 처음부터 수많은 용어 자체에 기가 죽고 만다. 그래서 규칙을 모르면 재미가 없다. 한마디로 지루하다.

 

하지만 끈기 있게 몇 게임 유심히 지켜보면 경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차츰 용어도 익숙해지고 규칙도 숙지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복잡한 거 싫어하는 사람은 야구에 익숙해지기 어렵지만 약간의 인내력만 발휘하면 복잡함은 흥미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야구에 빠져들면 매니아적인 성향을 보인다. 대충 봐서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집중을 해야 하고 그러므로서 깊이 몰입하게 된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게 야구다. 그 흥미로움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 경기의 시스템과 규칙을 알고 긴장감을 즐긴다면 당신은 열혈팬이다. 그리고 간접적인 메카니즘까지 파고든다면 광팬이 될 수 있다.

야구의 본고장은 미국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과거 소련은 야구를 가장 아메리카적이고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을 했으며 당연히 야구 자체를 자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아마도 야구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어서, 일종의 미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한다. 왜냐하면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는 야구가 국기이니까 말이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황야의 결투다

 

 

야구는 미국에서 만들어져서 인지 미국적인 요소가 다분히 배어있는 게 사실이다.(영국의 크리켓과는 많이 다르다) 특히 투수와 타자의 대결을 보면 마치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황야의 무법자처럼 서부영화의 결투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동일한 조건 하에서 목숨을 건 퀵 드로(quick draw)하는 황야의 결투처럼 투수와 타자는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승부는 총알 한발로 갈리듯 공 하나에 승패가 좌우된다. 결투는 똑같은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다. 누가 권총을 먼저 뽑아도 안 되고 피하면서 총을 뽑아도 안 된다. 카운터다운에 들어가면 피할 수 없다. 승부를 봐야 한다. 어느 쪽이 살든 죽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투수는 기본적으로 제한된 지점으로 공을 던져야 타자를 잡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 공을 받아쳐야지만 타자는 살아나갈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논리이다. 투수가 제한된 곳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면 포볼만 양산하게 되고 결국은 타자를 그냥 내보내게 된다. 타자도 스트라익으로 들어오는 공을 치지 못하면 스트라익 아웃을 당한다. 대결은 극히 제한적이고 미세한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반칙을 쓸 수도 없다. 모든 수를 내놓고 정정당당하게 게임은 이루어진다. 단지 스트라익존에서 벌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누가 놓치지 않느냐에 따라서 승부가 결정지어진다. 스트락익존을 지나는 공은 매우 공평하고 정직하다. 그래서 승부는 거짓이 없다. 어떻게 보면 청교도적이다.

 

- 야구는 정중동의 경기이다

 

 

야구는 정적인 운동이다. 투수가 공을 잡고 준비 동작에 들어가면 8명의 수비수들은 움직임을 멈춘 채 공의 궤적에 시선을 집중하고, 물론 타자도 동작을 멈추고 공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투수를 뺀 나머지 선수들은 동작을 멈추고 있어야 한다. 그 몇 초 동안은 어떠한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는다. 공이 자신에게 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시나리오가 머리에서 움직인다. 정중동이다. 어느 일정 시간 모든 동작이 딱 멈추는 것이다. 그래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익존으로 통과하느냐 아니면 타자가 치느냐에 따라 야수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공의 결과에 따라 야수들의 움직임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정중동이 있기 때문에 야구가 동아시아에서 인기가 많은지 모른다. 역으로 말하면 야구는 동양적인 경기이다. 야구가 인기 있는 지역이 북미와 중남미를 빼면 동아시아가 유일하다. 사실 중남미도 축구가 강세이지 야구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열광적이지도 않고 체계적이지도 않다. 한국과 일본과 대만의 야구는 국기나 다름없으며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일본은 미국보다도 야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고 많은 결과물을 축척하고 있다.

 

강한 내공을 가진 검객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자르듯, 타자의 방망이는 정에서 찰나의 순간 동으로 변하며 공을 쳐내야 한다. 정과 동은 하나이다. 정과 동은 일체이며 그 부분에서 타격의 능력이 최고로 올라간다.

 

옛날 어느 만화에서 본 건데, 시력을 잃은 어느 선수가 타자로 나서 공의 소리를 쫒아 타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은 시력으로 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힘으로 치는 것이라는 논리인데, 장님 검객이 나오는 무협 영화를 연상케도 한다. 바로 도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동양적 무술의 경지를 야구의 기술적인 부분과 접목시키면 흥미는 배가 된다.

 

-야구는 기록과 통계의 경기이다

 

그리고 운동 경기 중에 야구만큼 기록과 통계가 많은 종목은 없다. 한마디로 야구는 기록과 통계를 위한 경기라고 해도 선수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야구에는 수많은 기록이 있고 그 기록은 통계가 되며 그것은 분석되어 평가된다. 기록과 통계가 없으면 야구라는 경기는 무의미해진다. 그저 빵내기 동내 야구로 전락한다.

 

우리가 아는 타율, 장타율, 출루율, 피안타율, 방어율, 승률 등등이 있고 조금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OPS(출류율+장타율), ISOP(순수장타율), RC(득점생산율), 등이 있으며 또한 생소한 GPA, WHIP, IRS 등도 있다고 한다.

 

단어들이 생소할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수학 실력 정도만 되어도 손쉽게 계산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운동 경기는 그냥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데로 즐기면 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계산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야구에 매력을 가지기 힘들다. 야구의 묘미에 조금 더 접근하려면 기록과 통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기록 하나하나를 쫓아가다보면 숫자에 대한 묘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타율 장타율 출루율은 따로따로 계산되지만 서로 연관성이 있고 기록이 합쳐지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기록을 따지다보면 거기에서 흥미진진한 세계와 만나게 된다. 사고의 유연성 면에서 야구만한 경기도 없다. 기록과 상상력이 만나면 스트레스는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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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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