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여 논란을 격고 있다. 바로 스피드스케이트 여자 팀추월 경기 후유증이 그것이다.

 

사건의 시작인 219일 강릉 아이스아레나 경기장으로 돌아가 보면, 노선영 박지우 김보름 선수가 중반 넘을 때까지 함께 잘 달리다가 스퍼트를 끊을 시점에서 노선영이 쳐지기 시작했고, 그 간격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넓어져 갔다. 결국 경기는 생각지도 않게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여기서 그냥 끝났으면 그나마 후유증이 커지지 않았을 터인데 짓궂은 방송 기자가 인터뷰를 신청하면서 일은 사단이 나고 말았다. 그러니까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인터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가정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해본다.

 

팀추월 경기의 규칙이 3명의 선수가 함께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명을 떨어트리고 골인하는 것은 자멸하는 행위이며,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도 노선영 선수가 들으면 심기가 불편할 정도로 배려심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은 더러운 인성을 논하며 김보름 선수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노선영 선수에겐 측은지심을 적용시켰고 김보름 선수에겐 악녀의 논리를 적용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김보름과 감독이 사과의 기자회견을 하고, 노선영 선수는 언론을 통해 그 회견을 반박하는 인터뷰를 하는 등, 국가대표팀 내의 은밀한 내용까지 언론을 통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막장 폭로전을 방불케 했다. 수습불가의 전무후무한 파국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트위터나 각종 포털에 실리는 기사의 댓글을 보면 노선영 선수는 국가대표팀에서 왕따를 당한 당사자로 보호를 받고, 김보름 선수와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는 몹쓸 패거리로 매도를 당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보름 선수를 옹호하는 글은 찾을 수 없다. 심지어 김보름 선수를 향해 악마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언론의 기류도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김보름은 가해자고 노선영은 피해자라는 후레임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군중심리까지 가동되어 선악의 논리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현재처럼 확산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사이클 종목도 그렇거니와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도 가끔 한 명을 놓쳐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번 남자 팀추월에서도 폴란드팀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되었다.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승부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경기의 룰을 잠시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팀추월 경기 뿐만 아니라 어느 경기서도 에너지가 넘치면 경기를 망칠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선수 개개인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으며 물론 결과는 선수들 개인이 책임질 일이다.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동네 조기 팀이라 할지라도 경기 중에 팀 선수를 왕따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구기종목이라면 그런 경우가 발생할 소지가 있지만, 3명이 하는 팀추월 경기의 긴박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한 선수를 왕따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발자국 더 들어가 생각해보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신이 당사자라면 어떤 한 사람이 밉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경기에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겠는가. 그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누구 좋으라고.

 

또한 논란이 된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 보편적인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볼 때도 불편했을 정도로 투박했지만 어느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뜻하지 않게 경기를 망친 후 곧바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터뷰를 했으니 입에서 긍정적인 맨트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였는지 모른다.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정제를 한 후에 맨트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만 것이다. 평상시 그의 당돌한 성격으로 볼 때 그런 상황을 빗겨가기 수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어릴 때부터 팀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운동에 매진한 25살이지 않는가.

 

그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수년전부터 피땀을 흘려왔다. 인생의 목표는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그는 오직 그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부단히 달려왔을 뿐이다. 그게 전부이다. 경기를 하면서 실수를 하였고 언론에 불미스런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는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딸이며 어느 누구의 동생이며 누나이다. 그가 살아온 길지 않은 여정을 볼 때 이렇게 일방적으로 매도될 정도로 막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이 사건은, 이제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대다수의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적폐 문제는 그 조직의 문제이지 김보름 선수를 그 카테고리에 넣고 논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온라인상에서 그를 난도질하는 행위와 언론의 비이성적인 논조는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다르지 않다. 김보름 선수를 선악의 논리로 본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대중적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김보름 선수가 어떤 성정과 인성을 가진 개체인지 우리가 감히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그의 인권의 손상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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