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풍경

 

DMZ에서 처음 맞닥트리는 건 허공에 맹렬히 울려 퍼지는 대남, 대북방송 소리와 끝없이 굽이져 이어진 불모지화 된 황토색 능선들이다. 청각과 시각은 낯선 그 살풍경에 압도된다. 터질 것 같은 고출력 앰프와 초현실적인 기괴한 무대장치 위에서 벌어지는 헤비메탈 공연처럼, 그렇게 하드 코어 풍광이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다.


남과 북 GP마다 큐브 모양의 스피커들이 서 있고, 철책 너머에는 축구장 조명탑처럼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거대한 스피커가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스피커들은 서로 정조준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파상공격을 해댄다. 수많은 포탄이 비무장지대 공중에서 서로 충돌하고 그 파편들이 고스란히 우리가 있는 GP로 떨어진다. 비록 살상무기는 사용하지 않지만, 고성능 스피커를 통한 심리전은 연일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곳은 심리전의 적나라한 교전장인 셈이다.

"민족의 태양이시고 위대한 영도자이신 김일성 수령 아버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 대남방송은 "타향살이"를 마지막으로 자정을 넘어 방송을 마감한다. 낮에 하는 방송은 주로 군가 풍의 노래와 노동당 뉴스들이기 때문에 우리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야간이 되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밤이 깊어갈 무렵에 경계근무를 하는 GP의 초병에겐 "타향살이"가 그냥 스쳐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아니다. 하늘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가 손에 잡힐 듯 초롱초롱 빛나고,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그러면서 "타향살이 몇 해던가…"라는 구슬픈 옛노래가 그 빛나는 하늘에 퍼지면 초병의 감성은 촉촉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 전투력을 상실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좀 지나다 보면 그저 라디오에서 나오는 가요쯤으로 여기고, 선천적으로 감각이 무딘 초병은 아예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하여튼 마음대로 앰프 코드를 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거기에 좀 이따 보면 상황에 놀랍도록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장시간 심리전에 노출되어 있으면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심리전에 오염이 될 수 있다고 군의 심리전 교범은 말한다. 하여 대략 3개월 주기로 GP의 주인은 바뀐다. 꼭 오염 때문만은 아니지만, 전투력 유지 측면에서 볼 때 환경의 변화는 필요하기도 하다. 산봉우리 좁은 울타리 안에서 오랜 기간 생활한다는 게 전투력 향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남방송 중에 한동안은 대담프로가 우리 사이에서 인기였다. 월북한 병사와 장교와 그리고 민간인들 너덧 명이 출연해 남한을 비판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방송이었다. 자신들이 왜 월북하게 되었는지 그 내막을 아주 자세하게 떠들어대고 현재는 김일성 수령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국방부 병사들도 고생하지 말고 천국이나 다름없는 북으로 넘어오라는 친절한 조언을 빠트리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의 구성원들이 수시로 바뀌는데 그들 중에는 지금도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신삥'월북자들도 있었다. 운전병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지프를 몰고 북으로 넘어갔다는 모 사단 대대장과 선임의 괴롭힘에 참지 못하고 넘어왔다는 사병 그리고 도박과 여자 문제로 헌병대에서 내사를 받던 중 월북한 모 부대 중대장 등 그러한 내용은 사실처럼 우리 사이에서 이미 회자하고 있었다. 국방부 신문이나 방송에는 나오지 않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처럼 널리 펴져 있던 소문들이었다.

언젠가 대남방송 소리가 더 잘 들려 그 연유를 우리 GP 방송병에게 물어보았더니 앰프 출력이 북쪽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지금이야 남쪽 앰프 출력이 월등하여 북한이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그때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릴 때면 이곳은 유난히 더 뜨거워진다. 겨울에 추운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여름에도 페바보다 더 뜨겁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건 바로 지열 때문인지 모른다.

남과 북의 철책 비무장지대 안쪽으로 사계청소 확보를 위해 황토색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정도로 몇십 미터를 불모지 작업을 해놓았다. 특히 북쪽의 상태는 더욱 심각하여 아예 5부 능선까지 불모지화 된 곳도 많았다. 그 능선을 따라 콘크리로 지어 올린 군 시설물들이 그 살풍경을 더욱 고착화하고 있었다. 폭 4km의 DMZ가 그런 흉측한 모양을 한 채 한반도를 가로질러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군사분계선 안쪽으로 들어오면 숲은 이루고 있지만, 그것 또한 대한민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식적인 숲은 아니다. 가을과 봄이 되면 남과 북은 화공작전을 벌이고 때론 시도 때도 없이 고라니들이 뛰어놀다 지뢰를 터트려 산불을 일으킨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그곳은 화염에 시달려왔고, 그런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며 과거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모진 풍상에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숲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갈참나무, 싸리나무, 생강나무, 칡 나무 등 사람 키만 한 잡목들과 마치 골프장 페어웨이처럼 듬성듬성 벗겨진 초지 지대가 태반을 차지하고, 그 사이로 그나마 나무 행세를 하는 떡갈나무와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와 그리고 희귀하지만 수십 년 동안 화마를 견디어내고 거목으로 자란 참나무도 의연하게 서 있다.

그리고 화마에 시꺼멓게 그슬린 크고 작은 나무들이 제각각 기괴한 모습을 한 채 곳곳에서 수십 년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군사분계선 하얀 삼각형 팻말이 보이는 구릉 한쪽에 불에 타 죽는 거대한 고사목 하나가 초지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망원경으로 보면 마치 신들린 나무처럼 영험함과 섬뜩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열은 고스란히 GP로 밀려 들어와 우리를 사정없이 괴롭혔다. 특히 부식차를 엄호하기 위해 통문에 갔다 올 때면 정말 초주검이었다. 월남전에서 사용했음 직 한 묵직한 방탄조끼는 더위의 강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하긴 한여름 이런 날씨에 DMZ를 휘젓고 다니는 수색조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이긴 하다.

GP는 관측이 목적이기 때문에 산봉우리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물론 북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남과 북은 사이좋게 서로를 마주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상대 거리가 들쑥날쑥하다. 가능하면 1km를 넘기려 하지 않고, 가까운 곳은 불과 500m도 안 된다. 그냥 맨눈으로 상대방을 관측할 수 있고 맨 목소리로 대화도 할 수 있는 거리이다.

우리 GP는 약 800m 정도였다. 한강 다리 중에서도 가장 짧다고 하는 한남대교보다 더 짧은 거리이다. 맨눈으로 보려면 시력이 좀 좋아야 하지만 포대경이나 쌍안경으로 보면 아주 생생하게 라이브로 북쪽 GP를 관찰할 수 있다. 물론 그쪽도 상황은 똑같다. 서로서로 관측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상황은 대게가 연출에 가깝다.

북한군은 뙤약볕 아래 그늘도 없는 황량한 능선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서로 화기애애하게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북한식 무술과 총검술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심리전을 망각하고 질통과 화목나무를 운반하는 모습과 때론 얼차려 받은 인간적인 모습도 덤으로 보여준다. 하긴 우리도 그런 모습을 연출하라고 교육은 받았지만 겸연쩍어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침 녘 정규방송이 잠시 휴식을 취할 즈음, 바람 없는 맑은 날씨가 이어질 때면, 그들은 어김없이 깔때기 확성기로 다정하게 아침 인사를 한다.

"국방부 동무들! 밥 새 편안하셨습니까! 이 화창한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오늘 우리 전우 중에 한 명이 생일이라 아침은 소고깃국을 배불리 먹었지요…."

훈련 잘된 심리전 병사가 또박또박 표준말로 자랑질해댄다. 그들의 아침 인사가 끝나면 우리도 대응한다. 담당은 목소리 큰 강 상병이다.

"우린 소고깃국 매일 먹는다, 이놈들아!"

애들 장난 같은 짓이지만 그들과 우린 이렇게 대화를 한다.

 

 

- 오마이뉴스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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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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