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DMZ-3 지뢰

DMZ 2015. 11. 3. 16:00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빗줄기는 굵어져 갔다. 북쪽을 향해 있는 상황실 유리창에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밤은 칠흑으로 변해가고, 빗소리가 그 공간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천둥소리가 대인지뢰 터지듯 찌렁거리며 어둠을 두 쪽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전이 왔다. 수색중대 박쥐의 무전이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폭우로 철수를 해야겠다며 30분 후에 지피 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나는 그 사실을 소대장한테 알렸다. 

수색, 매복조들이 작전을 하다가 불가피하게 철수할 경우가 발생할 때는 가까운 GP에 피신을 요청하는 건 작전의 일부였다. 또한 수색조가 북한군과 교전이 붙을 경우엔 상황에 따라 GP에서 지원을 나가야 한다.

박쥐 10명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에 흠뻑 젖은 채로 GP에 들어왔다. GP장의 인솔로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간 그들은 흥건히 젖은 방탄복과 군복을 벗은 후 꽈배기처럼 비틀어 물기를 짜내고 있었다. 얼굴에 발라져 있는 위장약은 비에도 벗겨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칠흑 같은 어둠과 폭우를 뚫고 온 그들의 하얀 눈동자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자정이 조금 안될 무렵 나는 상황실을 후반조인 신일병에게 맞기고 식당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페바에 있을 때 같은 저격수 요원이었던 박병장도 있었다. 군복을 다 짜고 다시 입은 박병장은 내가 앉은 식탁 옆으로 왔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담배를 주고 불을 붙여주었다. 그는 담배를 몇 모금 만에 다 피워 없앴다. 담배연기가 그의 머리 위에 자욱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수색과 매복에 이제는 이골이 붙었다고 이죽거렸으며 말년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해댔다. 나는 "말년에 조심해야지, 떨어지는 낙엽도 피하라고 하는데 말야" 하며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문득 한 달 전에 있었던 지뢰 사고에 대해 물었다. 그 사건이 그가 속한 소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 사고 수색조에 박병장도 일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생하게 그때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수색은 모 지피에서 관측된 수상한 물체를 확인하는 작전이었다. 그런 목적 수색은 종종 있었다. 관측된 수상한 물체는 필히 확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날은 봄 햇살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사실 이런 수색은 부담이 많았다. 지뢰밭을 피해 오솔길을 따라가는 단순 수색보다 위험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철칙은 다니던 길 밖을 넘지 않는 것이다. 공식적인 지뢰지역이든 아니든 길을 벗어나는 행위는 자살행위이다. 

하지만 작전을 하다보면 길을 벗어나지 않을 수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위험에 대한 인식이 반감된다. 작전에서 수칙은 절대적일 수 없다. 전체 수색지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 똑같은 장소를 여러 번 갈 때가 있는데, 그걸 경우는 대게 긴장이 이완될 때가 많다. 

목표 지점에 다다랐을 때 수색조는 자세를 낮추고 사주 경계를 하며 조금씩 앞으로 이동했다. 처음 접하는 지역이었다. 분대장이 첨병에 섰다. 지뢰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길도 아니었다. 항상 애매한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주변 상황이 위험할 때 수색을 중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수색대로서 자존심 문제였다. 이럴 경우 이상하리만치 욕심이 솟구친다.

분대장은 무언가 위험한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았다. 수색 대열이 조금 흐트러졌고, 앞서 가던 분대장과 후미의 거리가 10미터 정도 벌어졌다. 그때 분대장이 오지마라고 소리쳤고 곧이어 쩡!하는 폭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단발마의 비명소리도 동시에 들렸다.

분대장은 발목지뢰를 발로 밟은 게 아니라 엎드리면서 무릎으로 밟아버렸다. 그의 무릎은 걸레처럼 너덜거렸다. 피가 솟구쳤다. 상태가 심했다. 수색조는 본능적으로 그를 둘러매고 철책을 향해 무조건 뛰었다. 서로 번갈아 가며 둘러맸다. 거친 숨소리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습지를 지나고, 구릉을 지나고, 된비알 고개를 넘어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는 점점 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헬기로 운송도중 죽었다. 발로 밟았다면 물론 살았겠지만, 그게 그의 운명인지 발목지뢰는 그의 무릎을 원했다. 비무장지대에서는 이런 격언이 있다. 발 아래를 조심하라. 

말 나온 김에 또 다른 지뢰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의 친척 동생의 이야기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군에 입대한 그는 일 년도 채 안 되었을 때 철책 넘어 비무장지대에서 지뢰제거 작업 지원을 나갔다가 대인지뢰를 밟았다. 

철책 사계청소 선을 넓히기 위한 불모지 작업을 하기 전에 지뢰 제거작업이 선행되어야 했고, 그 작업을 하는 공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철책 경계 소대가 투입되었는데 동생이 그 중에 한 명이었다. 지뢰제거반이 앞에서 작업을 완료하면서 전진하기 때문에 뒤에서 따라가는 지원병들은 그나마 위험요소는 적었다. 

하지만 지뢰는 땅 속에서 그 지뢰탐지기를 피해 다녔고, 그렇게 동생의 몸을 산산 조각내었다. 지뢰가 제거된 지역에서 동생은 대인지뢰를 밟은 것이다. 뻥소리와 함께 그는 허공으로 날았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 그 찰나의 순간, 참 평온했었노라고 몇 년 뒤에 그는 말했다. 

그리고 15일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반쪽은 사리지고 없었다. 없어진 오른팔과 다리와 눈은 머리에서 만 남아 계속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주의에서 들리는 말로는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살아났고 했다. 다들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신이 밟은 지뢰로 인해 소대장을 비롯해 4명이 숨졌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기적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대인지뢰를 밟고서 살아남은 기적, 옆에 있던 동료 4명이 죽는 과정에서도 자신만 살아남은 기적,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살아남은 자로서 어떻게 받아주어야 할지, 살아남은 게 행운인지 죽었어야 하는 게 행운인지, 중요한 것은 산자로서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세상은 상식적이며 범상하게 그의 시간을 접수하고 있었다.

비무장지대에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있고, 아름다운 산도 있고, 들녘도 있고, 강도 있고, 개천도 있고, 계곡도 있고, 고라니도 있고, 나무도 있고, 야생초도 있고, 고사목도 있고, 사람도 있고, 그리고 지뢰도 있다. 세월이 흘러 그 지뢰는 현재 그것들을 지배하고 있다.

1953년 휴전이 있은 후 비무장지대에는 대전차지뢰, 대인지뢰, 일명 발목지뢰라고 하는 엠14지뢰 등 수많은 지뢰들이 살포되었다. 과장된 설인지 모르지만 미군은 발목지뢰 같은 것은 비행기로 뿌려댔다고 한다. 물론 북쪽도 마찬가지였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지뢰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지뢰는 주기적으로 계획된 설계에 따라 정밀하게 매립하고 제거한다. 몇 십 년 동안 비무장지대에서는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100개를 심고 100개를 제거할 수는 없다. 그 제거하지 못한 지뢰들이 유령처럼 땅 속을 떠도는 것이다. 

심어 놓은 지뢰는 폭우와 산사태 등으로 유실되기도 하고 흙과 낙엽에 묻혀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 나무처럼 한곳에 지긋이 있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폭우와 기후변화 등으로 숨어 있던 지뢰가 다시 모습을 들어낸다. 지뢰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 왔다.

어느 따뜻한 봄날 땅속 어디엔가 숨어있던 발목지뢰가 봄기운을 받아 당초 있던 자리를 벗어나 지면으로 상승하고 그 위에 노랑제비꽃이 핀다. 그 유혹은 아련하다. 우리는 그 꽃을 보며 평화를 느낀다. 그 아이러니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그렇게 그런 모양으로 존재할 뿐이다.

지뢰는 에이리언처럼 강한 생존력을 가졌다. 그놈은 비무장지대란 생태계에서 최상위 개체로 진화하였다. 아마도 그놈은 자웅동체로 진화하여 자체에서 번식을 할지도 모른다. 하여 그들은 현재 비무장지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천적은 없다. 지금도 땅 속에서 유령처럼 떠돌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우리들 누군가를 집어삼킬 것이다.

우리는 지뢰와 싸워 결코 이길 수 없다. 이곳에서 만큼은 지뢰가 인간보다 우월하다. 특히 발목지뢰는 잔인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대인지뢰는 밟으면 거의 죽음에 이르지만 그 놈은 그 이름처럼 절묘하게 발목까지만 절단을 하고 관대하게도 목숨은 살려놓는다. 지뢰사고의 70~80%는 그놈 몫이다. 작은 보온병 뚜껑 정도 크기의 그 놈은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오히려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며, 그런 현상에 대한 설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동생은 20여 년 후 따사로운 어느 봄날 자살한다. 아마도 세상은 그가 살만한 곳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이승에 살면서 자기 자신이 선택한 처음이자 마지막 행위인지 모른다. 아니면 상식적이고 범상한 이 세상을 향한 복수였는지도 모른다. 

난 그날 참 많이 울었다. 서러웠다. 그가 서러웠고, 내가 서러웠고 그리고 우리가 서러웠다. 그에게 이 글을 바친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2015년 10월26일


'DMZ'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픽션>DMZ-6 생존의 법칙  (0) 2015.11.19
<논픽션>DMZ-5 영창  (0) 2015.11.19
<논픽션>DMZ-4 특과병  (0) 2015.11.19
<논픽션>DMZ-2 몇 가지 풍경  (0) 2015.10.26
<논픽션>DMZ 1 - 통문  (0) 2015.10.17
Posted by 안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