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가 전 지구로 확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왜 걷고 걸어 지구 끝까지 갔을까. 60,000년 전 아프리카를 완벽하게 탈출한 호모 사피엔스 일부는 가장 가까운 유럽 지역에 무사히 정착을 했지만 일부는 동쪽으로 머나먼 여정을 이어갔다. 그들의 여정은 어떤 신의 계시를 받은 듯 끊임없이 거친 대지를 따라 계속 이어졌다. 배도 없이 강을 건너고 길도 없는 고산지대와 숲으로 뒤엉킨 평야지대를 헤치며 걷고 또한 수많은 동물들과 싸우면서도 동쪽으로의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힘이 그들을 동쪽으로 이끌었을까. 서쪽으로 간 형제들은 유럽에서 비교적 안락한 삶을 영위할 때 그들은 빙하기의 혹독한 지구 환경과 싸우며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걷고 또 걸었다. 동쪽에 도대체 무엇이 존재하기에 그들은 홀릭에 빠진 듯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을까.

 

호모 사피엔스가 유라시아 동쪽으로 가서 수많은 흔적을 남겼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알타이 산맥과 바이칼호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언어가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학교에서 배웠듯이 동아시아 인류사에서 알타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시베리아 남부로 분류되는 그 지역에는 45,000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거주했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도 함께 공존하던 곳이다. 인간 게놈 분석에 의하면 3개의 인류 종이 서로 유전자 일부를 공유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보면 알타이 지역에서 3개 종이 어떠한 형태든 교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티베트 사람들이 고산지대 즉 저산소 환경에 적응한 원인에 대해 게놈 분석을 해보았는데 데니소바인의 유전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지구 상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함께 공존한 지역은 현재 고고학적으로 볼 때 알타이 지역이 유일할 것이다. 석회암 지역의 특성상 동굴이 많은 유럽에서 신인류의 유골이 많이 발굴되어 인류학적 고증에 신뢰성이 높지만 알타이 지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적지도 그에 못지않은 인류학적인 깊이를 더해 준다. 많은 호미니드들이 그곳에 살았다는 것은 분명한 팩트이다. 그것도 다양한 종이 공존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북동쪽 시베리아 지역으로 이주했다. 흔히 북극권 툰드라 지역이라고 알고 있는 지역이었다. 이주를 한 여러 무리 중에 한 무리는 북극권 최북단에 있는 야나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32,000년 전이었다. 공식적인 명칭이 Yana RHS라고 하는 복합 유적지가 2001년부터 2014년까지 7개의 포인트에서 발굴되었다. 코뿔소 다리뼈로 만든 창이라는 뜻의 야나(Yana) RHC 유적에서는 수백 개의 동물뼈와 상아 조각들과 함께 다양한 석기들이 노출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몇 만년 동안 결빙과 해빙과 침식 등을 겪으면서 퇴적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도 살지 않고 도로도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노출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일시적인 야영 장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던 정착촌 수준의 공동체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32,000년 전의 치아 두 개가 발견되어 분자유전학 분석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특히 발굴 후반기에 매머드 뼈들이 수백 개가 발견된 것을 보면 당시 인간은 매머드를 다량으로 사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는 거대한 짐승을 보고 놀랐지만 곧 그 동물이 덩치만 컸지 온순하다는 것을 알고 사냥하기 시작했다. 당시 강력한 무기인 투창기가 있어서 느린 매머드를 제압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오리려 죽은 매머드를 해체하는 게 더 힘이 들었다. 하지만 매머드는 식용으로 쓰지는 않은 것 같다. 큰 뼈와 가죽은 추위를 막아주는 주거지를 건축하는 자재로 사용했고 상아는 다양한 도구나 장식품을 만드는 데 사용을 했다. 시베리아에서 발굴된 유적 중에 매머드 뼈와 상아로 만든 주거지가 있는 것을 보면 매머드 사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화롭던 매머드 세계에 인간이 나타나 기존의 생태 질서를 파괴했던 것이다. 매머드와 인간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빙기가 끝난 홀로세 때도 수많은 매머드는 인간에게 도살되었다. 그리고 흔히 매머드 무덤이라는 장소가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매머드의 멸종 주범은 인간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심지어 비교적 온난한 지역이었던 멕시코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매머드 무덤이 발견되었다.

 

32,000년 그 당시는 플라이스토세 말기로서 마지막 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야나인이 매머드와 식용 동물들을 사냥하며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지구 환경은 급변하고 있었다. 드디어 LGM(Last Glacial Maximum) 즉 최후빙하극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300만 년 동안의 빙하기 시절 빙기와 간빙기가 수십만 년 단위로 진행되다가 마지막 빙기가 지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구의 평균 기온이 –6도 하강하였고, 북극권에서는 –14도까지 내려가는 가장 혹독한 추위가 몰아쳤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5억 년 만에 가장 기온이 낮은 시기였다고 한다. 유럽은 알프스 산맥 북쪽이 거의 빙하로 덮였고, 북아메리카에서는 캐나다 전역이 최고 6,000미터 높이까지 빙하가 형성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물 중에 20%가 얼음이었다고 한다. 지구에 생존하는 동물들은 삶의 조건이 맞는 지역으로 대 이주 현상이 벌어졌다. 유럽 중부에서 화려한 오리아시안 문화를 형성했던 크로마뇽인은 지중해안이나 보다 따듯한 레반트 지역으로 이주를 했고, 알타이와 바이칼호 부근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도 남쪽으로 이주했다. 31,000년에 시작한 최후빙하극성기는 16,000년까지 이어졌다. 무려 15,000년 동안 지구는 꽁꽁 얼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동북부 지역과 지금의 알랙스카 지역은 빙하로부터 벗어나는 극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기온은 급 하강했지만 빙하의 재료가 되는 수분이 극히 제한된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눈이 내린다고 해도 빙하가 형성되지 않을 정도로 건조한 환경이 빙기 동안 계속 이어졌다. 기후학자나 지질학자들이 그런 현상에 대해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분석하지만 30,000년 전의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그렇더라도 과학적인 근거로 인해 현재는 위의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한다.  바로 그 광활한 땅에 관목과 초원 지대가 형성되었고 동물들도 그 환경에 맞게 적응하며 생존했다. 물론 인간도 그중에 일부였다. 그 지역을 고고학적으로 베링기아라고 부른다. 흔히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베링 육교가 바로 그곳이다.

 

베링기아로 들어가기 전에 블루피쉬 동굴(Bluefish Cave)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 가겠다. 1975년 알랙스카 중부 유콘 강에 낚시를 하기 위해 이동하던 헬리콥터 안에서 우연히 관찰된 블루피쉬 동굴은 지역 원주민 사이에서는 알려진 동굴이었지만 외지인에게는 생소한 동굴이었다. 그 헬리콥터를 타고 있던 낚시꾼은 동굴이 있다는 사실을 지인에게 알렸고 그 얘기는 운명처럼 캐나다의 고고학자이자 박물관 큐레이터 출신인 자크 싱크 마르스에게 전달되었다. 고고학자의 직업적인 예리한 촉각으로 그는 그 동굴을 찾아갔고 역시나 직감적으로 중요한 무언가가 묻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20년 동안 그 동굴을 발굴했는데 전념했다. 동굴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인간이 해체한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동물뼈와 그 작업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석기들이 있었는데 연대 측정을 한 결과 24,000년 전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밝혀낸 유적의 결과물은 당시 학계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 보수적인 고고학계에서는 24,000년이라는 연대기를 믿지 않았다. 종교처럼 완고한 학문의 벽 앞에 싱크 마르스는 좌절하고 말았다. 어떤 과학적 논리와 증거물에도 고고학계는 수긍하지 않고 오히려 비웃었다. 북아메리카에 최초로 형성된 구석기 문화는 크로비스 문화로서 그 시기가 14,000년이었다. 그러니까 14,000년 전에는 어떠한 호모 사피엔스도 북아메리카에 발을 딛지 않았다는 설이 당시 90년대 북미 고고학계에서는 정설이었고 신앙 같은 굳건한 믿음이었다. 일병 '클로비스 퍼스트' 가설이라고 부른다. 블루피쉬도 북아메리카에 속하는 지역이므로 이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싱크 마르스가 옳았다는 것은 15년이 지난 후 서서히 밝혀졌다. 처음 발굴 시점부터 따지면 40년 가까운 시간이었다. 당시보다 업그레이드된 하이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다시 분석을 한 결과 24,000년이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니까 24,000년 전에 그곳에 인간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21세기 고고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확고한 자리를 자리 잡게 되었으며, 살아생전 자신의 고고학 업적을 보지 못할지도 몰랐던 싱크 마르스를 고고학계의 중심으로 소환하게 만들었다.

 

고고학적으로 베링기아의 범위를 보면 서쪽으로는 러시아 레나강, 동쪽으로는 알랙스카 유콘강 지류인 맥켄지 강, 남쪽으로는 캄차가 반도, 북쪽으로는 축지해까지이다. 그리고 거리로 따지면 베링 해역을 중심으로 남북 1,609km, 동서 4,828km라고 한다. 그 지역은 거의 육지였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바다지만 당시 빙기 때는 대부분 육지였다. 베링 육교라고 하니까 좁은 통로쯤으로 생각하지만 실재로는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었다. 당시는 지구의 평균 해수면이 지금보다 120미터 정도 낮았기 때문에 베링기아도 그 영향을 받아 광활한 육지를 노출시켰다. 이런 베링기아 현상은 빙하기 내내 빙기 때 확대되었다가 간빙기 때 축소되기를 수차례 반복되었다. 지구적 환경의 급변에 가장 극적으로 반응하는 곳이 바로 베링기아였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해양학자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분자생물학자들이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연구하고 분석을 했다. 지금도 베링기아의 고생태학 연구는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베링기아의 서쪽 끝에는 야나RHS가 위치하고 동쪽 끝에는 블루피쉬 동굴이 위치한다. 야나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동쪽으로 이주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주했다기보다 당시 중요한 식량자원인 들소 때를 쫓아 이동하면서 유목생활을 했다는 것이 옳다. 사바나 초원에서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사자의 무리처럼 인간의 무리도 베링기아 범위 안에서 이동을 하며 생존을 한 것이다. 베링기아의 생존 환경은 혹독한 빙기에도 비교적 기온이 높아 동식물이 사는 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었다. 한냉 건조한 기후가 만들어낸 관목 초지 지역은 들소와 무스 같은 초식동물에게 풍부한 식량을 제공했고, 매머드와 마스토돈 같은 대형동물들에게도 천국과도 같은 장소였으며 무엇보다 그 동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과 사자 같은 포식자에겐  최적의 생존 조건을 선사하고 있었다. 베링기아는 기후 변화 피난처를 뜻하는 레퓨지움(Refugium) 같은 선택받은 지역이었으며, 인류학적으로 LGM Refugium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베링기아 지역은 단순히 인간이 아메리카로 진출하는 통로라는 가설이 우세했었다. 그래서 육교라는 단어를 썼지만 최근의 가설은 그곳에서 인간이 10,000년 동안 살았다는 일명 Beringian Standstill Model(BSM)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그 뜻을 풀이하자면 거대한 빙벽에 가로막고 있어서 남쪽으로 더 이동하지 못하고 고립된 채 26,000년 전에서 16,000년까지 정체된 삶을 영위했다는 이론이다. 이 가설은 지극히 인류세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거대한 빙하로 인해 남쪽으로 이동하려는 노마드적 욕망을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지역에서 생존하는 데 큰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링기아에서 10,000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의 질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생존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출처:위키피디아

BSM 이론은 가장 최근에 나온 가설로서 처음 탄생한 것은 분자생물학에 의해서였다. 시베리아 지역과 북아메리카에서 출토된 인간의 빈약한 뼈 조각을 채취하여 인간 Y염색체 DNA와 미토콘트리아 DNA 분석을 통해 시베리아에 살던 인간이 베링기아에서 10,000년 정도 유목 생활을 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유전학이 그것을 밝혔다면, 야나 RHS와 블루피쉬 동굴 유적은 고고학적으로 BSM이론을 증명한 것이다. 블루피쉬에서 24,000년 전에 사람이 살았다는 게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진화유전학은 베링기아의 인종과 북아메리카의 인종 관계를 새롭게 정립시켰다. 고고학에서는 야나RHS 문화와 북아메리카의 클로비스 문화의 연관성을 석기 형태의 유사성에서 찾았다면 진화 유전학은 유전적인 분석으로 사실 관계를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 샘플이 희소해서 신뢰성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고고학적 증거들과 대조 작업을 하면서 과학적 가설을 정립시켰다.        

 

베링기아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하다가 빙하 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던 인간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이런 의문은 백여 년 동안 전 지구적인 궁금증이었다. 진화 유전학에 의하면 약 35,000년 전 알타이와 바이칼호 지역에 정착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베리아와 동아시아로 갈라져서 진출한다. 마지막 빙기가 오기 전이었다. 북쪽으로 간 무리는 동북쪽으로 계속 이동을 해서 야나 강에 정착을 했고, 동아시아로 간 무리는 몽골, 아무르, 한국, 일본 등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북동 시베리아에 진출했던 무리들이 최후빙하극성기가 닥치자 거대 동물과 들소 때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요한 식량 자원인 들소 때를 추적했다는 것은 인류사에 중요한 현상이었다. 그들이 바로 베링기아의 중심에서 10,000년 동안 유목생활을 했고, 거대한 빙하 문이 열리자 다시 들소 때를 따라 남으로 이동한 것이다. 결론은 14,000년 전 크로비스 문화를 이루었던 인종은 동북 시베리아인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집요한 유전학적 추적에 따르면 베링기아에 살던 사람들은 남쪽으로도 갔지만 다시 시베리아 쪽으로 귀향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그곳에는 여러 공동체가 생존했기 때문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이동을 하지 않았고 각자의 욕망에 따라 이동을 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몽골의 후손이며 그 몽골은 우리의 선조이기 때문에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우리는 사촌 간이라고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국뽕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런 사실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인류학과 해부학과 언어학을 총동원하여 설명하는 운동이 벌이지고 있었다. 몽골반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진화 유전학적으로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전자에는 북동 시베리아인 유전자가 가장 많고 동아시아인 유전자는 일부만 나타난다고 한다. 인종적으로 볼 때 약 30,000년 전에 두 인종이 갈라진 것이다. 북동 시베리아인 즉 베링기아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들이 북아메리카의 직계 선조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장구한 시간이 흘러 최후빙하극성기가 서서히 물러나고 베링기아에도 봄날이 찾아오고 있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플라이스토세기가 종말을 고하고 홀로세기에 돌입한 것이다. 16,000년 ~ 14,000년 지구적인 대전환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온은 올라가고 거대한 빙벽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빙하기 중에서 가장 혹독했던 마지막 빙기가 빠르게 물러나고 있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수천 킬로미터 높이에 이르던 남쪽의 코르딜레란(cordilleran)빙하와 동쪽의 로렌타이드(Laurentide)빙하가 서서히 해빙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태평양 연안에 접해있던 코르딜레란 빙하가 녹으면서 해안선을 따라 땅이 노출되었고, 2,000년이 지난 후에는 붙어 있던 두 빙하가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땅이 나타났다. 해빙되어 땅이 노출되는 시간보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속도가 느렸다. 그 시간 간격이 1,000년 안팎이라고 하는데 그 기간 사이에 태평양 해안을 따라 회랑이 형성되었으며 많은 동물들이 그 길을 따라 이동을 감행했다. 베링기아에 살던 털매머드, 마스토돈, 불곰 무스, 들소, 말 등 수많은 동물들이 서쪽과 동남쪽으로 대 이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라 베링기아에 살던 인간들도 새로운 환경을 찾아 이주하기 시작했다. 서쪽 시베리아로 가는 무리가 많았지만 남쪽 해안선 회랑으로 이동하는 무리도 있었다. 서쪽은 오래전에 선조들이 살았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어 낯설지 않았지만 빙벽 넘어 남쪽은 미지의 땅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 남쪽 빙하를 따라 간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돌아오지 않았으며 그들이 생존했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전해오고 있었다. 그래도 용기를 가진 어느 무리는 동물들을 따라 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 그들은 두려움을 억누르며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땅으로.

 

그 시기에 대한 가설이 무궁무진하지만, 북아메리카 클로비스 문화 형성 시점이 14,000년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주 시기가 16,000년 ~ 15,000년 전이라는 게 일반적인 가설이다. 남북 아메리카 선사시대 유적 중에 북아메리카 진출의 기준점이 되는 14,500년이 넘는 곳도 있고, 심지어 브라질에 있는 토카 다 티라 페이야 유적지는 20,000년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런 근거를 들어 베링기아에서 이미 더 오래전에 남쪽으로 떠났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태평양 해안선의 빙벽을 피해 전진하다가 배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남쪽으로 루트를 개척했고 다시 베링기아로 귀향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처음이라는 의미에 너무 집착한 결과 클로비스 문화 시기를 절댓값으로 두고 계산을 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어느 특정한 시점 없이 해안선 루트를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해안선 루트로만 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루트가 있다는 최신 연구가 발표되었다. 홀로세에 접어들면서 기온이 하강하자 코르딜레란(cordilleran)빙하와 로렌타이드(Laurentide)빙하가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길이 났다. 그 길이 맥켄지 강에서 시작한다고 하여 맥켄지 회랑이라고도 하고, IFC(Ice Free Corridor)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회랑 가설을 낳게 한 원인은 두 빙하 사이 즉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있는 찰리 호수 동굴에서 들소의 뼈와 들소를 사냥하여 해체한 것으로 보이는 클로비스 석기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연대 측정 결과 12,500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태평양 해안선 루트를 따라 이동을 했고 해수면이 올라가자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때 마침 모세의 기적처럼 내륙으로 거대한 빙하가 갈라졌던 것이다. 이 내륙 루트의 연구는 들소들의 이동로였음을 밝힘으로써 루트의 신뢰성을 얻는 것이며, 그 분석은 들소 때를 추적하는 베링기아인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 연구의 종점은 록키산맥 동쪽 내륙으로 이동한 그들이 바로 뉴멕시코 클로비스 지역에 문화를 형성한 클로비스인의 선조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2개의 이동 경로는 현재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 가설이다. 유럽에서 지질학적 층서학과 석기 형태를 바탕으로 한 문화권을 세분화하여 학문적 축척을 하였듯이, 인간의 아메리카 이주에 대해서도 캐나다와 미국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고전적인 고고학은 물론이고 고생태학, 분자생물학, 기후학 등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른 가설들이 계속 발표되고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한계가 있고 가설의 가설만 생산할 뿐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이고 한편으로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세속적 목적이 가미되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인류의 확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동력을 준 것에 대해서는 일반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의미는 있다고 볼 수 있다.

 

60,000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거대한 유라시아를 횡단하면서 기존의 구인류와 경쟁하고 이겨낸 신인류는 더 머나먼 여정을 이어가 지구 상에서 가장 추은 베링기아에 당도하였다. 그곳은 빙벽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막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어느덧 35,000년이나 훌쩍 지나 있었다. 빙하기 중에서도 가장 추었던 지구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지구 상의 어느 동물도 이보다 생존력이 강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느 호미니드도 이보다 생존력이 강하지 못했다. 베링기아인들은 지구 상에서 최극단빙기 환경에 가장 적응이 잘 된 생명체였다. 들소보다도 그들은 지구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10,000년이란 시간 동안 그 척박한 베링기아에서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는 그들이 매머드를 사냥하던 넓은 땅은 바다에 잠겨있고, 그들의 뜨거운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디오메데 제도와 세인트로렌스 섬 만이 외롭게 베링해에 떠 있다.

 

우리는 그 베링기아인들이 어디까지 이주했는지 이제는 잘 알고 있다. 현재 인류세는 그들의 여정에 대해 위대했었노라고 칭송하지만 그런 인식은 불과 100년 전에 생겨난 일종이 낭만성이 가득한 인류학적인 변론이었다. 홀로세 이후 아메리카로 넘어간 인류는 다시는 자신의 선조들이 살았던 유라시아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고립된 상태로 14,000년 이상 살았다. 그리고 유라시아와는 전혀 다른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했다. 그 문화의 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현격하게 벌어져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문화의 격차는 종국에는, 15세기 대해양의 시대에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인해 극명하게 확인되었고, 그 이후의 역사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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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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