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에 떠돌던 먼지들이 모여 지구라는 행성이 만들어진 게 지구의 시간으로 약 46억 년 전이다. 그렇게 우주적 우연에 의해 지구가 탄생했고 10억 년 후에도 우연에 의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기물이 만들어졌다. 불안정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물리 화학이 지배하는 혼돈의 시대에 태양빛과 유기물이 절묘하게 광합성 반응을 하면서 산소라는 분자가 생성되었고, 우연히 자체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그리고 스스로 분열하여 번식을 하는 단세포 생명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카오스와 같은 거대한 물리 화학 세계에서 눈에도 보이지 않는 움직이는 존재가 외부의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생명체의 등장은 빅뱅처럼 우주적 대 사건이었다. 물론 인과관계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난 후 지질학적으로 부류 되는 지난 5억 년 동안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번에서 최소한 5번의 대멸절이 있었다고 한다. 대멸절이란 지구의 생명체가 70% 이성 멸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대멸절 사건이 백악기 제3기인 6천6백만 년 전에 벌어졌던 공룡의 대멸종이다. 소행성의 충돌이 원인이라는 가설이 유력하지만 그저 가설일 뿐 팩트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사실 소행성 한방으로 순식간에 대멸절이 일어났다고는 볼 수 없고, 그 충돌과 함께 지구의 생태환경의 격변하였기 때문에 거대 동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작았던 곤충과 포유류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어떤 존재의 미세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우연이었다. 인류 원리를 설파하는 식자들은 이 우주에서 인간이 존재하게 된 원인이 우연일 리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주를 인간 중심으로 보는 형이상학적 사유에 불과하다. 지구 탄생과 인간으로 가는 지구사적 서사는 적절한 환경의 변화를 조정하는 어떤 기적적인 현상의 연속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살아남고 자연선택을 하면서 진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마지막 대멸절에서 살아남은 포유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렇게 대멸절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포유류 중에 수많은 변이를 거쳐 유인원이 등장하였고, 그들이 진화하여 아이러니컬하게도 빙하기 때 어떤 돌연변이에 의해 직립보행을 하는 유인원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런 종의 변이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수십 종의 직립보행 종들이 명멸하였다. 그리고 결국 200만 년 동안 지구 곳곳에 퍼져 살던 호미니드들은 전부 멸종되고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가장 혹독했던 빙하기를 이겨내고 다른 호미니드를 흡수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일찍이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진 종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몇 억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보다 그들은 더 강했다. 그렇게 종의 다양성을 역행하면서 쾌속으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와 한 시대에 생존했던 호미니드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도 그래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인류학의 시발점은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화석 발견되고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유럽에서 인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은 네안데르탈인이었다. 19세기 중엽 독일의 네안데르라는 도시에서 발굴된 고인류의 두개골은 유럽인의 조상이 어떤 존재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하게 한 인류학적 유골이었다. 유럽인은 네안데르 도시 이름에 동굴의 독일어인 탈을 붙인 네안데르탈인을 자신들의 먼 선조인 원시인이라고 추정하였다. 하지만 유럽인은 자신들의 원형이라고 여기면서도 네안데르탈인을 몸집만 크고 무식한 종이라고 규정지었다. 동양적인 사고로는 납득할 수 없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무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툭 튀어나온 눈덩이, 넓적한 코, 돌출된 입, 호모 사피엔스보다 큰 머리 그리고 체형도 고릴라처럼 두껍고 구부정한 그들의 외모는 출판물 삽화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원시인의 모습이었다. 무식한 원시인의 대명사가 네안데르탈인이었으며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비속어의 일종이기도 했다.

 

하여튼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인에게 가장 친숙한 고인류였고 인류학에서도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유골들이 발굴된 보배와 같은 존재였다. 200년 가까이 200개가 넘는 유골들이 유럽을 중심으로 근동과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발굴되었다. 숫적으로 보면 단연 유럽이 많아서 한때는 그러니까 다지역 기원설이 유력했던 시절에는 유럽의 특화된 고인류라고 추정하였고 연구 또한 다른 고인류에 비해 정밀하게 이루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인류의 대명사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세계로 들어가 보겠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탈출해 유럽에 도착한 45,00년 전까지 네안데르탈인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300,000년 동안 유지하고 있었다. 60만 년 전부터 생존했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그들은 후세 인류세가 명명한 무스테리안이라는 고유한 석기 문화를 형성했다. 대표적으로 아슐리안 석기시대를 종식하고 르발루아 기법인 뗀석기 시대를 열었고, 날카롭게 만든 그 석기로 동물의 뼈와 근육을 절단하기도 하고 또한 창을 만들어 동물을 사냥하는 데 사용하였다. 고기를 자를 수 있다는 것은 적당한 크기로 조각을 내어 운반하고 보관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창의 발견은 사냥 방법을 향상시켜서 그들의 육식 성향을 증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다 큰 동물을 사냥한 결과 나중에는 한때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순록과 들소 등을 집단으로 싸워 사냥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에는 육식에 집착하여 멸종에 이르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지만 고기 맛을 안 그들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들의 뼈는 해부학적인 형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굵었고 강도면에서도 강했다. 그 뼈를 자세히 관찰하면 상처투성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접근전을 마다하지 않고 큰 동물을 사냥하다 부상을 당했거나 그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들의 거친 삶의 흔적을 영력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은 사냥하여 잡은 대형동물의 가죽을 날카로운 석기로 도려낸 후 이빨로 무두질하여 옷을 해 입었고, 그로 인해 빙기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의 일원이 사망하면 매장을 함으로써 사랑하는 이의 혼령을 빌어주었다. 감정의 변화를 어떤 행위로써 보여주는 의식의 일종이었다. 고기만 탐식하는 무식한 원시인이 아니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미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와 그리스 지중해안에서 네안데르탈인으로 보이는 구인류가 사용한 패각류들이 다량으로 발굴되었는데, 그것을 보면 그들은 고기만 섭취한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해산물도 채취하여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한다. 따라서 수영과 잠수하는 방법도 알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정도 뒤따른다.

 

그들의 유골이 대다수 유럽에서 발견되었지만 가깝게는 북아프리카와 근동 레반트 회랑에서도 여러 개가 발굴되었고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발굴되었다. 아래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겠지만, 특히 그들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데니소바인과 깊은 관계를 형성했다는 흔적도 발견되었다. 어느 네안데르탈인이 그 먼 시베리아까지 왜 이동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생활 반경은 상상외로 넓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보다 나은 삶을 찾아서 강을 건너고 길도 없는 거친 산야를 헤치며 이동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시기적으로 보면 45,000년에서 35,000년 사이, 길게는 10,000년 최소한 5,000년 동안은 유럽에서 동시대에 공존했고, 레반트 회랑에서는 120,000년 전의 유골 화석이 각각 가르멜 산에서 발굴된 것으로 보아 어떤 방법이든 함께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두 종이 동시대에 함께 살았느냐 아니냐를 두고 몇십 년 동안 갑론을박을 해 왔는데 결론은 서로 교류를 한 것은 물론이고 이종교배도 하여 혼종을 생산하였다는 설이 이제 정설이 되었다. 어떤 형태든 그 두 종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교류도 했던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까지 생존하지 못했다. 새로운 문화와 역량을 가지고 들어온 신인류가 자신들의 낙원을 빼앗아 갔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경쟁자가 없으면 나태해지고 발전은 침체하기 마련이며 그만큼 진화의 속도는 정체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생존의 경쟁자가 없던 그들에겐 변화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300,000년 동안 유럽에 생존했던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빙하기라는 지구 환경이었고 동굴사자 같은 맹수들은 생존 자체에 큰 위협은 주지 않았다. 살기는 고됐지만, 큰 변화가 없는 그런 무미건조한 삶이 기나긴 시간 동안 그들을 지배했다. 그들의 고루한 일상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로막았다. 새로움에 대한 욕구도 없는 단순한 시간이 긴 터널 속에 갇혀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그중에 몇 개 만 추려 보면, 우선 기후 변화를 예로 든다. 북대서양 쪽에 있던 대형 빙하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강력한 계절성 기후가 나타나 혹한이 유럽 대륙을 덮쳤고, 혹은 이탈리아 캄파니아의 거대한 이그님브라이트 화산이 분출하여 유럽의 하늘을 덮어 산성비가 몇 년 동안 내렸다는 등의 자연환경의 급변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재촉했다고 한다. 또한 식인 풍습, 즉 죽은 자들의 뇌를 먹으므로 해서 전염성 해면상 뇌병증이 횡횡한 결과라는 설도 있다. 또한 낮은 출산율에 따른 적은 개체수로 인해 자연선택의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었고, 신인류와 달리 공동체의 인원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모래알처럼 응집력도 약해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환경의 급변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멸종을 촉발한 원인은 신인류의 등장이었다.

 

구인류와 신인류의 대립적 관계는 인류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다. 먼저 신인류는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있었지만 구인류는 제한적인 언어만 구사할 수 있었고, 신인류는 투창기를 발명하여 원거리에서 동물을 사냥하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구인류는 근접전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냥 방법으로 인해 사망률이 높았고, 신인류는 예술이라는 문화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인류는 먹는 데만 집착하였기 때문에 문화를 짜깁기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신인류는 몇십 명 단위로 모여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구인류는 독고다이처럼 집단의 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이 처음 호모 사피엔스와 접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를 상상해 본다. 자신들보다 전체적인 몸집은 작지만 키가 크고 날렵하고 영악하고 지혜로운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했을까. 1492년 유럽인이 처음 아메리카 땅을 딛었을 때 그 지역 원주민들이 그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로 보았듯이 네안데르탈인도 신인류를 경외의 대상으로 보았는지 모른다. 싸워서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과 매우 불편한 공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세대가 지나가고 삶의 환경도 변화무쌍하게 바뀌었으며 그러면서 네안데르탈인의 개체수는 서서히 감소하였다. 신인류가 구인류를 폭력을 동원하여 멸절시켰을 것이란 학설이 한 때는 정설이었지만, 현재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라는 분자생물학의 힘을 입어 신인류의 유전자에 구인류의 유전자가 2%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옴으로써 서로 이종교배를 했다는 설이 거의 정설이 되어 있다. 그렇다고 같은 종처럼 적극적으로 교접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느 정도의 혼종이 만들어졌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게 그들은 신인류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갔다. 위에서 열거한 대로 구인류는 신인류의 우월적 능력 앞에 힘을 쓰지 못하고 서서히 흡수되어 결국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35,000년 전 네안데르탈인 유골이 스페인 남부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유골을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매우 굶주린 상태로 사망한 사체였다고 하며, 인류학자들은 그 구인류가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보다 어린 네안데르탈인은 지구 상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안데르탈인은 지구 상에서 사라졌지만 호모 사피엔스 외에 그들과 접촉한 구인류가 또 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유라시아 동쪽으로 이주했던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된 후손인 데니소바인이었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호모 에렉투스에서 갈라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다시 네안데르탈과 데니소반으로 분리가 되어 진화하였다. 21세기 고고학과 인류학 세계에서 데니소바인은 핫이슈의 주인공이었고 세계 언론에서도 주목받는 스타급 고인류였다.

출처:위기피디아  /   데니소바인의 이동 경로

2008년, 러시아 우랄 알타이 산맥에 있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고인류의 것으로 보이는 어금니 한 개와 그리고 정강이뼈 조각 한 개가 발굴되었다. 그 후 2019년까지 어금니, 다리뼈, 정수리 뼈, 손가락뼈 등 10개 남짓한 조각 유골을 발굴하였다. 사실 이미 1980년에 중국 티베트 고원에 있는 바이시아 동굴에서 어금니 2개가 붙어 있는 하악 뼈 일부가 발견되었었지만 고고학적 관계를 모르고 지역 대학교에서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그 유골도 데니소바인 연구에 뒤늦게 포함을 시켰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골들은 두개골은 없고 모두가 치아나 뼈 조각이었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은 이 미미한 고고학 유골을 가지고 고인류학자들로 하여금 인류의 확산에 대한 대 서사를 쓰게 했다.

 

그 뼈들은 분자생물학의 일종인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과 콜라겐 단백질 분석 등으로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관계를 밝혔는데,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다리뼈의 주인공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 아버지를 둔 13살 정도의 여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 기술을 가지고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6%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한다. 또한 SDL연대 측정과 우라늄 토륨 연대측정 방법 등으로 밝힌 데니소바 유골의 연대는 165,000년에서 14,500년까지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165,000년에서 14,500년까지 생존했다는 것이다. 21세기 하이테크놀로지를 모두 동원한 결과들이다.

 

데니소바인은 호모 에렉투스의 아종으로 분류하며 동아시아에서 진화를 거듭했다. 아직까지는 그들의 화석이 호모 솔로엔시스처럼 명징한 두개골 같은 형태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구인류와 교류를 했다는 증거들이 있는 것을 보면 동, 남 아시아 지역에서 폭넓게 분포하여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데니소바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도 발굴된 것을 보면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은 다른 시기에 살기도 하고 때론 서로 교접을 하며 혼종을 생산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생존하던 네안데르탈인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을 하여 왜 그 추운 곳까지 이동했는지는 모르지만, 유골의 유전자는 그것이 사실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데니소바인은 동아시아에서만 살았던 것이 아니라,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적도 부근에 있는 뉴기니아까지 확산한 것으로 밝혀졌다. 뉴기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사는 원주민들의 유전자에서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일부 발견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빙하기라 인도네시아 섬들과 동남아 지역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순다랜드의 시절이었기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현재의 인도네시아 자바섬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었지만, 윌리스 라인이라고 부르는 해협은 여전히 깊은 바다로 형성되어 있어서 배를 이용해야만 건너갈 수 있었다. 부산에서 대마도 거리 정도 되는 바다와 섬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순다해협과 뉴기니아와 그리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오스트랄라시아 영역으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설들이 회자되지만 아무튼 어떤 방법이든 그곳까지 데니소바인들이 이주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도 이미 5만 년 전에 오스트랄라시아로 건너갔기 때문에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어느 누군가가 수십 세대를 거치며 산 넘고 물 건너는 기다긴 여정 끝에 파라다이스에 도착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땅에 드디어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100,000년 이상 행복하게 살고 있던 그들 앞에 보다 똑똑한 신인류가 나타난 것이다. 45,000년부터 30,000년 사이였다. 네안데르탈인처럼 개체수가 적고 지적 능력이 떨어졌던 그들은 최하 10,000년 동안 신인류와 어떤 방식이든 적극적으로 교류를 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분석에 의하면 그 두 인류의 유전자가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네안데르탈인처럼 신인류에게 흡수되어 지구 상에서 사라졌다. 물론 한 순간에 절멸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10,000년 혹은 20,000년에 거쳐 서서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사라진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신인류의 영향이 컸다는 점이다. 약육강식이란 자연생태계의 현상을 어느 누고도 탓할 수는 없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가는 곳에서는 다른 종의 생존은 보장받을 수 없었다.

 

데니소바인은 미미한 뼈와 치아 화석 몇 개를 가지고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그들의 존재를 밝혀냈지만,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발굴된 호모 솔로시엔스는 이미 1930년대에 두개골과 해골 그리고 경골 등 뚜렷한 형태의 화석 14개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높은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흔히 그들을 솔로맨이라고 부른다. 특히 해부학적으로 뇌 용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서, 1,013cc~1251cc라는 체적 값이 얻을 수 있었고, 그 용량은 호모 에렉투스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고고학의 발굴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아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듯이 이 솔로맨의 고고학 발굴 역사도 파란만장했다고 한다. 당시의 고고학 발굴은 체계적이 면이나 자금적인 면에서도 순조롭지 않았는데, 솔로맨의 발굴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발굴 담당자들이 개인사적인 사유 등으로 몇 번 바뀌고,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등을 거치면서 유골들이 미국까지 가는 고초를 겪은 후 1978년에야 인도네시아로 다시 돌아와 정착을 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은 자바원인으로 유명한 호모 에렉투스의 아종이 생존했던 중심지였다. 20세기 초반 한때는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동남아시아라고 했을 정도로 고고학적 증거들이 풍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호모 종이 하나의 가지로 연결된 것이 아니고 각자 진화를 했다는 평행론도 있지만, 정설은 솔로맨은 자바원인의 진화된 아종이라고 한다. 먼저 솔로맨을 말하기 전에 순다랜드라는 지역에 대해 알아야 한다. 위에서 데니소바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순다랜드는 대륙붕으로 형성된 동남아 해협이 빙기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대륙의 지형을 일컫는다. 판구조론에 의하면 순다랜드가 속한 지각판과 사훌랜드가 속한 지각판이 접하고 있는 곳으로써 코모도 섬과 플로레스 섬 등이 나열되어 있는 순다열도가 위치하고 있으며 화산과 지진이 끊이지 않고 바다 수심도 해구처럼 깊다. 빙기 때는 육지였다가 간빙기 때는 열도로 변하는 현상이 300만 년의 빙하기 동안 20번 가까이 반복되었다. 그동안 평균적으로 수면이 현재보다 30~40m 아래에 있었고, 마지막 빙기인 3만 년에서 1만 8천 년 사이에는 무려 120m까지 낮아지기도 했으며, 그 후에도 몇 번 변하다가 5천 년 전부터 지금의 수면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지구적 격변으로 인해 서로 환경을 공유하던 동물들의 종이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결국에는 19세기 찰스 다윈과 깊은 관계가 있는 영국의 생물학자인 윌리스가 관심을 가지고 조사한 결과 순다랜드의 지질학적 특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으로 인해 그곳에 사는 많은 동물과 고인류도 매우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섬에 고립되어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코끼리 아종인 스테고돈, 호랑이 아종인 느간동 호랑이, 피그미 하마라고 부르는 헥사프로토돈, 들소의 아종인 보스 팔라손다이쿠스 등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었다고 한다. 전체 빙하기의 역사와 다른 동물들의 역사에 비하면 고인류는 상대적으로 짧은 100만 년 정도밖에 생존하지 못했지만 그동안에도 여러 번의 모세의 기적이 발생했다. 아마도 솔로맨은 그런 자연재해의 마지막 세대였을 것이다.

 

그런 솔로맨 역시 최첨단 과학기술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부학과 탄소연대측정 등 아날로그식 분석은 이미 끝났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인류세인은 1988년부터 데니소바인처럼 온갖 분자생물학 분석과 현존하는 연대측정 방법 10개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방법(우라늄 토륨연대측정, 전자스핀 공명 연대측정, 감마분광법, 부석 혼블렌데의 아르곤 연대측정 등)을 동원하여 정밀하게 그들의 정체를 밝혀냈다.

 

특히 고인류학과 관계된 식자들은 두개골 분석 결과를 토대로 여러 가지 가설을 만들어 냈다. 먼저 식인 풍습으로서 살해 후 뇌를 파먹었다는 흔적이 보인다는 설도 있고, 두개골 만 한 장소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것으로 보아 헤드 헌팅 즉 어떤 방법이든 상대를 살해한 후 기념으로 해골을 모아둔 것이라는 설도 있고, 당시 자바섬에 서식했던 호랑이가 솔로맨들을 잡아먹고 남은 뼈라는 설들이 양산되었다. 그리고 동굴이 아니라 특이하게 강가에서 발견된 점을 들어 강의 범람 등 자연재해로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강가에 살던 솔로맨 부족이 도망갈 틈도 없이 강은 범람하였고, 그 거센 강물에 휩쓸려 흘러가다 굴곡진 부분에서 정체 현상이 일어났고, 그곳에 시신이 모였으며 곧이어 퇴적 현상이 일어나 수만 년 동안 잠들었다는 기나긴 서사를 엮어내기도 한다. 어떻게 10개 넘는 두개골이 한 곳에서 발견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지만, 아쉽게도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저 추정만이 진실을 대신할 뿐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재 측정을 한 결과를 모아 보면 솔로맨은 200,000년 전부터 20,000년 전까지 생존했다는 값을 얻을 수 있다. 그 정도 기간이면 호모 사피엔스가 순다랜드에 도착한 시기와 맞물리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순다랜드에 도착한 것이 4만 5천 년 전이라는 게 정설인데, 그것을 보면 솔로맨은 데니소바인처럼 호모 사피엔스를 피할 수 없었다. 강자가 살아남고 그럼으로써 다양한 변이를 거쳐 형질화 되어 진화한다는 것은 지구의 보편적인 논리이다. 약육강식이 아니더라도 자연적으로 약한 종은 어떤 극적인 변이가 일어나지 않으면 개체수는 급속도록 줄어들기 마련이다. 영민한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량을 벗어나지 못한 솔로맨을 유럽인이 처음 메소아메리카 원주민을 보았듯이 형편없는 미개인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그래도 솔로맨은 두려운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와 조심스럽게 동행을 했다. 하지만 침입자들이 없어도 환경적인 요인과 포식 동물들에게 시달리느라 생존하기도 힘에 겨웠는데,  일정 시간이 지니자 생존의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했고 개체수는 점차 줄어들어 갔다. 그 많던 솔로맨을 하나 둘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마지막 솔로맨은 자신이 마지막 인지도 모른 채 솔로강을 내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바섬의 솔로맨을 동화시키면서도 육지 끝에서 저 멀리 수평선 끝에 보이는 섬 하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바다는 최강의 빙기가 오더라도 육지로 변하지 않는 윌리스 라인이라 불리는 깊은 바다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직립보행을 할 때도 그 바다는 모세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호모 사피엔스 무리가 통나무로 배를 만들어 그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아마도 여러 번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반복한 끝에 누군가가 드디어 그 섬에 도착했을 것이다. 바로 그 섬이 플로레스 섬이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섬에 도착한 한 무리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섬이 철저하게 고립된 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수백만 년 동안 육지와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으며 당연히 당시 사훌랜드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깊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신인류가 사훌랜드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순다열도를 거쳐 최소한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험악한 윌리스 라인을 건너 플로레스 섬을 접수한  호모 사피엔스들이 또다시 바다를 건너 어떠한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던 미지의 오스트랄라시아 대륙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인류는 자신들과 비슷한 어떤 종과 상봉을 한다. 한 무리의 신인류가 처음 플로레스섬에 당도했을 때 이미 그곳에는 난쟁이처럼 덩치가 작은 어떤 호미니드가 살고 있었다. 바로 훗날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고 불리는 고인류였다. 그들의 유골은 2003년, 오스트레일리아 고고학자들이 호모 사피엔스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하는 경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게 우연히 인도네시아 프로레스섬 리앙부아 동굴에서 다량으로 발굴하였다. 완전한 형태의 두개골 1개와 9개의 신체 부분 유골이 발굴되었고, 2015년까지 추가로 땅을 더 판 결과 두개골을 포함한 유골과 치아 등 총 15개(2015년 발굴된 치아 15개는 1개로 계산)의 발굴되었다. 그리고 순다랜드에서 발굴된 석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석기들이 발굴되었고 불을 사용한 흔적도 나왔다. 그런 유물들을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연대를 측정 분석하였는데 74,000년에서 13,000년까지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두개골을 보면 호모 에렉투스의 평균 뇌 용량인 980cc보다 훨씬 적은 380cc의 뇌 용량을 가진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키도 1m 안팎이어서 전설 속의 호빗 인간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며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추측과 이슈를 낳게 했다. 앞으로 계속 지구 곳곳의 땅을 파고 또 파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구인류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이 호빗은 현재 지구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고인류학적 유물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문가들을 흥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미스터리하고 매력적인 유물이었다.

 

그들이 어느 인류의 후예인지에 대해서는 가설이 많다. 뇌 용량이 침팬지 수준인 것으로 보아 자바원인 이전의 인류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과에 속하는 어느 고인류가 조상이라는 설도 있고, 자바원인 외의 우리가 모르는 다른 호미니드가 이주하여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있고, 나이 어린 자바원인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지만 유골과 치아의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크기는 작지만 성인이라는 판결이 나와서 그 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리고 소두증, 라론증후군, 선천성 요드결핍증후군, 심지어 다운증후군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설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그것 또한 그저 설에 불과할 뿐이다. 호모 에렉투스 즉 자바인이 당시 순다랜드에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생존했다는 것은 세계 각 국가의 역사책에 실리는 정설인데, 바로 지척에 있는 바다 너머 섬에서 생존했던 호빗이 다른 종이라고 하기엔 개연성에 결핍이 많은 논리였다. 미스터리 한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축척된 과학적 지식을 거부하면서까지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 한 유물과 이야기들은 지구 상에 무궁무진하지만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과학적 분석을 해보면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단지 현재의 지적 사고 능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몇 만 년 전의 인류에 대해 아는 것은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섬형 왜소증설이다. 섬형 왜소증은 과학적 논증이 어느 정도 확립된 설로서 어느 동물이 섬에 고립되면 제한된 환경으로 인해 먹이도 제한이 되기 마련이고 그런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먹이 양을 줄여야만 하며 그런 선택적 과정을 거치다 보면 몸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적은 먹이로 인한 체질량의 감소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만약 호빗이 포식자였다면 모르겠지만 당시 인류는 식물 체집과 초식 동물 정도를 사냥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은 축소되어야만 했고 그 변이의 속도는 상상외로 빨랐다고 한다.

 

호빗도 이런 진화의 과정을 거쳐 체구가 축소된 것이다. 모세의 기적이 최절정기 때 폭이 좁아진 바다를 건너간 한 무리의 자바원인은 바다가 다시 넓어지자 순다랜드로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눈물을 머금고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던 다른 동물들과 함께 생존해야만 했을 것이다. 섬이 작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먹이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산아를 제안하기도 하고, 기존의 몸집을 가진 호빗은 생존에 어려움을 겪다가 일찍 죽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먹이가 제한적으로 줄어들면서 선택적 변이가 일어나고 작은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공룡이 멸종한 이유 중에 하나도 공룡의 몸이 너무 비대했기 때문에 갑자기 변한 먹이 사슬 현상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소행성의 폭발로 지구 환경이 급변하여 초식 공룡이 먹을 식물이 극한적으로 줄어들었고, 그 초식 동물을 잡아먹던 티라노사우르스와 타르보사우르스 같은 육식동물도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포유류는 공룡의 배를 채울 수 없었다. 따라서 혹독했던 지구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작은 동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플로레스 섬에 고립된 자바원인도 본능적으로 더 작음을 지향해야만 했을 것이다. 작아져야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롭던 플로레스 섬에 역시나 지긋지긋한 호모 사피엔스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유전적으로 노마드 기질이 있어서 영하 수십 도가 넘는 혹독한 베링기아를 건너 아메리카로 이주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수만 킬로를 걸어 칠레 남단 몬테베르데까지 간 무지막지한 독종 중에 독종이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는 털매머드나 마스토돈 같은 초대형 동물들과 스밀로돈이나 악토두스 시무스 같은 맹수들도 말살되었다. 그들은 신출귀몰한 전문 사냥꾼이었다. 호빗과 신인류가 접촉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호빗이 생존했던 시기에 신인류가 오스트랄라시아 대륙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지나가는 길목에 있던 호빗과 어떠한 형태든 접촉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한다면 호빗의 멸종에 신인류의 영향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영민하고 생존 욕구가 강했던 신인류가, 그 먼 거리를 이동하며 수없이 많은 극한 상황을 헤치고 생존해 온 신인류가 과연 어린아이 같이 작고 약한 호빗을 그냥 두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여튼 호빗은 길게는 20,000년 전 혹은 최소한은 12,000년 전에 플로레스 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리하여 지구에는 모든 호미니드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사람종만 남았다.

 

200,000년 전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 알 수 없는 변이에 의해 지구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60,000년 동안 지구를 휩쓸고 다니면서 황야의 무법자처럼 경쟁 상대를 모두 멸종시키며 생존해 왔다. 그중에 일부, 그러니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솔로맨과 그리고 호빗도 호모 사피엔스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그것 말고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고 인류가 땅속에 묻혀 있는지 모른다. 지구는 상상보다 크고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도 널려 있다. 그런 현상을 당연히 선과 악으로 볼 수는 없다. 현재의 인류세는 모르지만 그때는 강자가 살아남는 시대였으며 그런 현상은 조물주가 허락했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가 곧 조물주에게 선택받은 선민이니까 말이다.

 

아주 먼 시절 한 때,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기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지구에 살았던 고인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네안데르탈인이 몇 프로만 더 영민했으면 자신보다 완력이 약했던 호모 사피엔스쯤은 멸종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4만 년을 더 생존했다면 지구는 지금 그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이 문명처럼 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네안데르탈인에게 미안하지만 30만 년 이상 그러했던 것처럼 4만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화가 지금 지구를 형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욕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를 횡단하여 베링 육교를 건너고 남아메리카 남단까지 가는 기나긴 여정을 할 수 있는 집념과 욕망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땅속에 묻혀 있는 네안데르탈인이 살아난다면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일구어놓은 이 지구에서 숨이 막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땅으로 들어갈지 모른다.

 

이제 지구에는 사람종 한 종이 지구 탄생 이래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포식자로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6번째라고 하는 지구 대멸절의 시대에, 구인류가 사라진 것처럼 신인류도 사라질 것인지 사실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구인류의 멸종은 적자생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어떤 생물학자는 진화론에서 적자생존론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다른 속은 몰라도 호모 속에서의 진화는 적자생존을 논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구인류와 신인류의 관계는 사자와 호랑이가 최소한 서로의 존재와 영역을 존중하는 것처럼 서로 존중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살상을 하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화롭게 함께 공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과 과거 신석기인의 모습을 보면 결코 당시 호모 사피엔스도 포용력과 배려심 같은 인간적 미덕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횡횡하고 있는 인종차별은 그런 수만 년의 기나긴 역사의 산물이며, 19세기에 우생학이 유럽에서 광풍을 일으켰던 것을 보면 이미 그들의 DNA 염기서열에는 그런 형질이 일부분 우성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사랑과 자비를 앞세운 막강한 종교의 힘이 지배했던 지난 2,000년 동안에도 그들은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일삼아 왔지 않는가. 그 절정은 인류 문명의 성지인 유럽에서 일어난 유대인 대학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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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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